“앞 사람과 거리는 1m 이상으로 유지해주세요!” 진행 요원의 목소리가 찬바람을 뚫고 울려 퍼졌다. 지난 17일 서울 고척동 고척 스카이돔. 그룹 NCT 127이 단독 콘서트를 연 이곳엔 여느 때보다 긴 줄이 늘어섰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객 간 거리두기가 강조된 탓이었다. 관객들은 마스크로 무장한 채 안내에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이날부터 19일까지 이어진 이번 공연엔 1만50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두기 강화안이 시행되기 직전 열린 대형 콘서트인 만큼 마스크 착용과 안심콜 사용 등을 당부하는 안내판이 곳곳에 내걸렸다. 주최 측은 인파가 몰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콘서트 시작 5시간 전부터 방역 부스를 운영했다. 관객들은 신분증, 백신 접종 증명서 혹은 PCR 음성 확인서, 사전 문진표 및 안심콜 접수 내역을 내보인 뒤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는 10대 관객은 “전날 PCR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검사가) 아팠지만, 콘서트를 위해 이 정도 쯤은…”이라며 웃었다.
함성·구호·떼창이 금지된 공연장에선 ‘침묵의 춤판’이 벌어졌다. NCT 127이 무대에서 ‘브렉퍼스트’(Breakfast)와 ‘메아리’를 부르는 동안, 관객들은 노래에 맞춰 응원봉으로 원을 그리거나 허공을 찌르며 조용히 춤을 췄다. NCT 127은 공연에 앞서 SNS에 ‘응원봉 댄스’를 안내하는 영상을 올리며 팬들 독려를 참여했다. 코로나19가 만든 진풍경이다.
“모두 소리 지르지 말고~ 박수 쳐!” 코로나19 전파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2년 가까이 열리지 못했던 대중음악 공연이 지난달 재개된 뒤, 방역친화적인 응원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같은 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가수 김준수의 콘서트에선 스케치북이 관객을 맞았다. 팬들은 김준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에 적어 흔들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가수와 관객 간 육성 대화가 불가능해지자 소속사가 낸 묘안이었다. “다들 (스케치북에) 쓰셔야 해요. 첫 번째 ‘찢었다’(라고 써주세요).” 김준수는 이렇게 너스레를 떨며 공연 분위기를 달궜다.
일부 팬들은 일찌감치 ‘스꾸’(스케치북 꾸미기)에 나섰다. 18일 공연을 본 관객 A씨도 그 중 하나다. A씨가 스케치북에 적어 간 ‘사람이 어떻게 노래를 이렇게 잘할 수 있지’라는 문구는 공연 당시 카메라 감독 눈에 들어 전광판에도 등장했다. A씨는 “환호로 소통할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준비해준 정성이 고마웠다”면서 “많은 팬 분들이 재밌는 문구를 준비해 와 공감도 되고 좋았다. 아티스트가 직접 스케치북을 확인하며 웃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잠실동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팬들을 만난 그룹 뉴이스트는 공연장 전광판에 ‘박수 악보’를 띄웠다. 노래 ‘잠꼬대’, ‘원 투 쓰리’(ONE TWO TRHEE), ‘파인 걸’(Fine Girl) 박자에 맞춰 팬들이 박수를 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혼자만 아는(짝!) / 꿈 속(짝!) 비밀 얘기 / 그녀를 초대해요(짝짝짝짝!)” 소속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짝’ 소리를 크게 내는 응원 도구 클래퍼를 관객 전원에게 나눠줬다. 이 응원 도구는 이달 초 열린 ‘Mnet 아시안 뮤직 어워즈’(Mnet Asian Music Awards·MAMA)에도 등장해 존재감을 뽐냈다.
소속사 관계자는 “오프라인 콘서트의 장점 중 하나가 관객들을 직접 마주하고 소통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함성 없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클래퍼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 분들께서 목소리로 전해주는 응원 대신, 리듬에 맞춰 박수와 클래퍼로 응원법을 따라해 주신 덕에 함성 없이도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