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을 소개합니다” [곰팡이로 얼룩진 아동주거권①]

“우리집을 소개합니다” [곰팡이로 얼룩진 아동주거권①]

어린이 10명 중 1명 주거빈곤...94만4000명 최저주거기준 이하
굿네이버스, 복지 사각지대 7263명 지원
정부, 아동주거권 보장 첫걸음...실태조사 시작해야

기사승인 2021-12-23 06:10:13
①“우리집을 소개합니다”
“방 하나 지원보다 어린이 목소리에 귀를”
이사 전 지성이(가명)네 가족이 살던 집의 화장실. 지성이는 비가 오면 화장실 천장에서 빗물이 샌다고 말했다. 사진=굿네이버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의 관심과 애정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다.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이 어떤 아이들에겐 위험하고 무서운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쿠키뉴스는 글로벌 어린이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회의 역할에 대해 살펴봤다.

마음까지 얼룩진 지성이네

만 14세 지성이(가명)는 깊고 축축한 반지하 원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월세를 겨우 깎아 마련한 이 집은 늘 젖어 있다. 곰팡이로 가득한 벽과 천장은 지성이네 가족에게 작은 한숨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빠는 일용직 근로자다. 코로나 이후에는 일이 없어 집으로 그냥 돌아오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그를 매일 아침 인력사무소로 이끈다.

뇌경색과 당뇨합병증. 지성이네 엄마가 앓고 있는 병이다. 병명마저도 응급실로 실려 가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부축 없이는 더 이상 혼자 걷지 못한다. 반지하의 수많은 계단은 엄마를 가두는 창살이 됐다. 집 안에 수많은 약봉지와 소변줄을 보며 지성이는 엄마와 더 이상 얘기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만 하다. 

지금 지성이네 가족은 반지하에서 올라와 볕이 잘 드는 1층 집에 살고 있다. 사진=굿네이버스

달라진 우리집을 소개합니다


지금 지성이네 가족은 반지하에서 올라와 볕이 잘 드는 1층 집에 살고 있다. 집에는 곰팡이 대신 생활가전제품과 생필품이 자리했으며 생활안정자금도 받고 있다. 덕분에 아빠는 생계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엄마의 병간호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방이 생긴 지성이에게는 웃음꽃이 피었다. 

“예전에는 학교에 갔다가 집에 와도 편하지 않았는데 새 집으로 이사해서 방이 생기고 침대와 책상, 옷장이 생겨서 정말 기뻐요. 책상이 생겨서 온라인 수업을 하기에도 불편하지 않아서 좋아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지난해 굿네이버스를 만나게 되면서다. 굿네이버스는 한국에서 설립되어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글로벌 어린이권리 전문 NGO다. 사업의 일환인 위기가정아동지원사업을 통해 ▲주거(월세‧임대보증금 등) ▲생계(난방비‧공공요금 등) ▲의료(수술입원비‧질환치료비 등) ▲아동(교육비 등) 등을 지원한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7263명에게 이같은 지원을 펼쳤다. 굿네이버스 측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빈곤, 방임 위기에 처한 어린이를 온라인 캠페인과 미디어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며 주변의 관심과 후원 참여를 바랐다.

어린이 10명 중 1명은 ‘주거빈곤’

대한민국 어린이 10명 중 1명은 지성이네와 같은 주거빈곤 상태에 놓여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대한민국에서 94만4000명의 어린이가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전체 어린이 중 9.7%에 해당하는 수치다. 주거빈곤은 최저주거기준(2인 기준 면적 26㎡, 수세식 화장실·전용 입식 부엌 등)을 충족하지 못한 주거환경과 옥탑방·지하방‧고시원 등 비주택에서 거주하는 주거형태를 아우르는 말이다.

보건복지부의 ‘2018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가구 중 기초생활보장급여 또는 한부모가족지원사업 수급가구의 7.95%가 적절한 난방이 갖춰지지 않은 주택에 거주한다고 응답했다. 또 ‘가구 및 구성원의 수에 맞는 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수급가구의 비율은 15.35%였다.지상이 아닌 옥탑방이나 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비율도 9.34%에 달했다.

주거빈곤은 아이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0년 서울시 아동가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거빈곤 가구 어린이들은 피부질환을 전체 가구 어린이에 비해 2배가량 많이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적으로도 전체 가구 어린이에 비해 행동 장애는 2배 가까이, 우울증 등 기분장애는 3배 이상 많았다. 주거빈곤 어린이들은 특히 코로나 2년 동안 더욱 큰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효상 기자

아동주거권 보장의 시작


지난 2019년 10월 공적 영역에서 처음 아동주거권 보장에 대한 약속이 이뤄졌다. 정부는 ‘아동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을 통해 주거상황이 취약한 어린이 가구를 적극 발굴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굿네이버스 등과 같은 NGO들과 협업을 맺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정확한 주거빈곤 가구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의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주거관련 조사는 앞서 언급한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와 보건복지부의 아동종합실태조사 정도다. 이마저도 5년에 한 번씩 이뤄지고 있으며, 인구주택총조사의 경우 전체 인구의 20%만을 표본으로 삼고 있다.

굿네이버스 고완석 아동권리옹호팀장은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안전한 주거공간이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하나, 주거빈곤가구 수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없어 실태 파악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라며 “국가 차원의 명확한 실태조사가 선행됨과 동시에 지자체, NGO, 사회복지기관, 학교 등 지역사회 내에서 주거취약계층을 발굴,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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