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땀 흘리며 몸 움직인 이는 방탄소년단만이 아니었다. 공연이 열린 지난 1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객석 한쪽에 수어 통역사가 있었다. 그의 양손은 방탄소년단 노래와 말을 농인 관객들에게 옮겨 전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공연을 보던 작사가 김이나는 이 모습을 SNS에 올리며 “앙코르곡으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나올 땐 (수어 통역이) 유난히 감동적이었다”고 적었다.
콘서트 수어 통역은 ‘농 아미’(수어를 제1언어로 쓰는 방탄소년단 팬)인 안정선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 대표가 부단히 노력해 얻어낸 결실이다. 그는 2018년 서울에서 열린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공연을 통역 없이 봤다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어떤 멘트를 하는지 몰라 수 만 명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듬해 열린 콘서트에선 수어 통역이 제공됐지만 과정이 험난했다. “수어 통역은 따로 신청해야 제공되거든요. 그런데 소속사와 직접 소통하는 게 아니라 예매처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해서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었어요.” 16일 서면으로 만난 안 대표가 들려준 얘기다.
이런 안 대표에게 아미들이 힘을 실어줬다. 소속사 하이브와 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 그가 SNS에 도움을 요청하자, 수많은 아미들이 ‘화력’을 보탰다. 결국 소속사는 안 대표 요청에 따라 농인 관객과 마주보는 자리에 수어 통역사 2명을 배치했다. 2019년 10월 열린 ‘러브 유어셀프 :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 SPEAK YOURSELF) 마지막 공연 때의 일이었다. 방탄소년단이 2년5개월 만에 대면 형식으로 연 이번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 공연에서도 2명의 수어 통역사가 함께했다.
농인에게 수어 통역은 ‘배려’가 아닌 ‘권리’다. 안 대표는 “동등하게 티켓을 구매하는 소비자로서 동등하게 수어통역을 통해서 음악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변화는 해외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방탄소년단이 2019년 공연한 곳으로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은 오는 6월부터 열리는 모든 라이브 공연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 롤라팔루자, 코첼라 뮤직 & 아트 페스티벌, 파이어플라이 뮤직 페스티벌 등 유명 음악 축제 무대에 수어 통역사가 함께 오른다. ‘접근 가능한 행사’(Accessible Festivals) 등 여러 비영리 단체가 노력한 결과다. 미국 래퍼 챈스 더 래퍼는 2017년 개최한 투어 공연에 수어 통역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장벽 없는 팬 활동을 향한 안 대표의 노력은 계속된다. 그는 지난 달 ‘하이브 인사이트 뮤지엄’을 관람하기 위해 하이브 측에 수어 통역 서비스를 요청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처음엔 “별도의 수어통역 서비스는 없다” “(수어 통역사를 따로 구하더라도) 통역사도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던 하이브 측은 이후 “수어통역사의 입장료를 면제하기로 했다”면서 “장애인 관람객의 편의 제공을 위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덕분에 안 대표와 일행은 수어 통역사와 함께 무사히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안 대표는 “콘서트 예매사이트를 보면, 장애인 편의 지원이 휠체어 장애인 중심으로 제공된다. 농인을 위한 소통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 또 일반 좌석을 예매하더라도 공연장에선 장애인 좌석으로 옮겨진다.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농인도 문화를 즐길 자격이 있는데, 농인 95%가량은 문화 경험이 없다. 농인은 수어를 언어로 쓰는 사람이다. 농인의 접근성을 고려한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