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이 수상 후보로 오른 제64회 그래미 어워즈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서 고배를 마셨던 방탄소년단은 올해도 같은 부문 트로피를 두고 쟁쟁한 팝스타들과 경쟁한다. 만약 상을 탄다면 한국 대중음악 가수 최초 수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래미 재수생’ 방탄소년단은 또 한 번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이번 그래미 어워즈는 오는 4월3일(현지시간, 한국시간 4월4일 오전 9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5월 발매해 세계적으로 흥행한 노래 ‘버터’(Butter)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경쟁작이 만만치 않다. 저스틴 비버와 페니 블랑코의 ‘론리’(Lonely), 콜드플레이의 ‘하이어 파워’(Higher Power), 레이디 가가와 토니 베넷의 ‘아이 겟 어 킥 아웃 오브 유’(I Get a Kick Out of You), 도자 캣과 시저의 ‘키스 미 모어’(Kiss Me More)가 ‘버터’와 겨룬다.
폭발적 인기 앞세운 ‘버터’, 그래미 장벽 넘을까
방탄소년단이 내세울 무기는 폭발적인 인기다. ‘버터’는 발매 당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그래미 경쟁작들은 물론, 지난해 나온 노래들을 통틀어 가장 오래 1위에 머물렀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비롯해 3개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는 ‘톱 듀오·그룹’ ‘톱 소셜 아티스트’ ‘톱 송 세일즈 아티스트’ ‘톱 셀링 송’ 등 4개 부문에서 상을 탔다.
그래미를 주최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도 방탄소년단의 이런 영향력을 주목하고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2019년 방탄소년단을 시상자로 처음 초청했고, 이듬해엔 미국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와 합동 무대에 방탄소년단을 출연시켰다. 지난해엔 방탄소년단 단독 무대를 시상식 후반부에 배치한 뒤 중간 광고 때마다 이를 홍보해 ‘방탄소년단을 시청률 미끼로 삼았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다. 방탄소년단은 올해도 그래미에 참석해 단독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가요 관계자는 “그래미가 ‘버터’의 히트 기록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작품에 작품상을 주는 등 장벽을 허물었다. 그래미 역시 이전보다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 그래미 어워즈는 백인 남성 가수를 우대하는 보수적·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음악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레코딩 아카데미도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다양한 인종·성별·장르를 가진 회원을 흡수하는 등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자작곡 선호하는 그래미, 방탄소년단 수상 낙관 어려워”
전문가들 사이에선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수상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웹진 이즘(IZM) 편집장인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서 보이그룹이 수상한 사례는 없다. 백스트릿보이즈, 조나스 브라더스 등도 이 부문에서 상을 타지 못했다”며 “그만큼 보이·걸그룹에게 허들이 높은 부문”이라고 짚었다. 김 평론가는 또 “레코딩 아카데미는 아티스트가 곡 작업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버터’와 ‘다이너마니트’는 멤버들 자작곡이 아니고,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상황에서 듣는 이를 위로하기 위해 내놓은 이벤트성 싱글이라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불리한 점이 많다”고 봤다. “그래미가 선호하지 않는 보이그룹의 댄스팝”인데다 “멤버들이 곡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고 자전적인 메시지가 돋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수상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 평론가는 “다른 후보작들도 만만치 않다. 레이디 가가와 토니 베넷의 ‘아이 겟…’은 미국이 사랑하는 전통 팝이고, ‘론리’는 슈퍼스타의 외로움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진솔함이 느껴진다. 레트로(복고)를 가져온 ‘키스 미 모어’의 경우, 빌보드 차트에서 1위하진 못했지만 꾸준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라며 “2년 연속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다. 설령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방탄소년단을 과소평가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