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지역에서 발생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에 국제사회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러시아 측은 부차 내 민간인 죽음이 우크라이나 측에 의해 조작됐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이 잇따르면서 서방은 대러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부차서 410명 민간인 사망자…러시아 “조작된 것”
4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철수한 부차 지역에서 총을 맞은 민간인 시신들이 발견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차를 방문해 “이것은 전쟁범죄. 전세계가 집단학살로 인식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협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한 키이우 인근 부차지역에서만 최소 410명의 민간인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를 비방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부차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 “이 정보는 진지하게 의심돼야 한다”며 “우리 전문가들은 위조된 가짜 영상이라는 징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완전히 철수한 후에 민간인 시신이 거리에 배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간인 학살 증거는 속속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부차 길거리에 시신들이 방치된 것이 3주가 훨씬 넘었으며, 러시아군이 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었을 때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공개한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3월9일과 3월11일 야블론스카 거리에 방치된 여러 구의 시신들이 나타난다. 우크라이나군이 부차를 탈환한 뒤 촬영된 4월2일자 영상에 시신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3주 이상 방치되고 있던 것.
서방국가, 러 추가 제재 예고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분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부차에서 우리가 본 진실은 그가 전범이라는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전쟁범죄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번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예고하고 전쟁을 부채질하는 러시아 경제 요소를 겨냥한 제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EU는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저지른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를 규명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부차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전쟁범죄의 명백한 증거”라며 새로운 제재와 조처의 필요성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특히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에 반대하던 독일은 입장 변화를 보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서방 동맹국들은 앞으로 며칠 안에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서방의 러시아 추가 제재는 지지하지만 현재 가스 공급을 차단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