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장애를 모르고 장애인의 삶을 모르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왜 버스를 세우고 지하철을 연착하고 한강 다리를 기어야 하는 일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살기 위한 외침임을 알아야 한다.”
지난 4일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삭발에 나선 배재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의원은 간곡히 호소했다. 이 대표와 정치권을 향해 ‘약자 혐오’를 멈추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요구를 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 볼모” “비문명적”… 이준석, 전장연 공개 저격
이 대표는 지난달 25일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등의 글을 올리며 전장연을 공개 비판했다.
공권력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25일 페이스북에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해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적었다.
결국 ‘장애인 혐오’ 논란이 불거졌다. 새 정부 출범 뒤 사회적 의제 조율에 나서야 할 당대표가 오히려 ‘장애인-비장애인’ 간 갈등을 키운다는 비판이다.
이에 전장연은 이 대표를 향해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는 지난달 29일 임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를 만난 자리에서 “공당의 대표이자 곧 여당 대표가 될 이 대표에게 사실을 왜곡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전달해달라”고 말했다.
다른 시민단체도 목소리를 보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회의 책임을 묻고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장애인들을 악마화하며 낙인과 혐오를 쏟아냈다”며 “이 대표는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혐오를 무차별적으로 확산하고 사회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차기 여당 대표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전장연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앞으로도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기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틀어막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까 걱정된다”(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차기 여당 대표의 공감 능력 '제로(0)'의 독선이 참으로 우려스럽다”(장혜영 정의당 의원),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과 장애인이 싸우도록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등 비판이 줄을 이었다.
전장연 “혐오 양산하는 李 발언 탓에 욕설 전화도 받아”
그럼에도 이 대표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장애인 혐오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전장연에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장연에 대해 제가 사과할 일은 없다”며 “전장연이 오히려 저에게 장애인 혐오 프레임을 씌우려고 했던 것에 사과한다면 받아줄 의향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장연 측에서 본인들의 비판 요소가 있다 보니까 왜 우리를 비판하냐가 아니라 왜 장애인을 혐오하냐 이렇게 틀어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장연 관계자는 5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의 언어가 혐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의 발언으로 발생하는 결과를 봐야 한다. 그의 행동은 혐오를 양산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과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의 전장연 저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토로했다. 그는 “이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의 욕설이 섞인 전화나 메시지로 인해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특정 단체를 거론하면 소위 ‘좌표’가 찍혀 그곳 사무실 전화기엔 불이 난다”고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5일 오전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벌써 5일차다. 이들은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답변을 촉구하기 위해서 휠체어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