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든링’식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달랐나 [게임읽기]

‘엘든링’식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달랐나 [게임읽기]

기사승인 2022-04-13 19:56:02
프롱소프트웨어 '엘든링'.  프롱소프트웨어

‘You died.’


프롬소프트웨어의 팬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프롬소프트웨어의 작품은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데요, 죽음마저 게임의 핵심 콘텐츠가 됐습니다.

지난 2월 출시된 프롬소프트웨어의 신작 ‘엘든링’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16일 기준 전 세계 누적 판매량 1200만을 돌파하는 등 역대 ‘소울라이크’ 게임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량입니다.

소울라이크 장르의 핵심은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퍼붓는 보스 몬스터와의 대결을 펼치는 것인데요.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반복 플레이를 거쳐 파훼법을 찾아야 합니다. 극악의 난이도로 진입장벽은 매우 높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죠. 

엘든링은 기존의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소울라이크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초반엔 불합리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보스도 인내심을 가지고 하다보면 공격 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또한 엘든링은 전작과 달리 ‘오픈월드’ 시스템을 도입해 육성 난이도를 낮췄습니다. 컨트롤이 부족하다면 스펙을 강화해서 게임을 클리어하라는 배려입니다. 

오픈월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여러모로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특히 오픈월드와 프롬소프트웨어 작품 특유의 비선형적 서사구조가 만나 좋은 시너지가 발생했습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너티독

서사구조에는 크게 두 가지 진행방식이 있습니다. 대중에게 익숙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에 많이 사용되는 것은 선형적인 서사구조입니다. 선형적 서사구조 속 스토리는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시작과 끝이 나뉘어 있습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호라이즌 제로 던’ 등 스토리를 중시하는 게임의 대부분은 선형적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반면 비선형적 서사구조는 정해진 순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형적 서사구조의 스토리가 ‘가나다라’ 순으로 진행된다면, 비선형적 서사구조에서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가에서 라로, 라에서 하’로 전개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선택에 따라 결말도 달라집니다. 참고로 엘든링에는 총 6개의 엔딩이 있으니 클리어 조건을 하나하나 달성한 뒤 확인해보길 바랍니다.

스토리나 배경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엘든링은 조금 특별합니다. 프롬소프트웨어의 전작들은 아이템의 위치 배치와 플레이버 텍스트(간단한 소개와 배경 설정), 그리고 게임 내 시스템까지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간접적으로 스토리를 전합니다. 플레이어는 여러 조각의 퍼즐을 맞추듯이 증거를 모아가면서 스토리를 유출할 수 있죠. 엘든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이어는 ‘빛바랜 자’가 돼 ‘데미갓’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하지만 왜 이들을 물리쳐야 하는지, 빛바랜 자들이 왜 선택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을 하면서 하나하나 알아 가야 합니다. 전작 소울 시리즈보다는 직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친절한 편은 아닙니다.

그나마 메인스토리는 여러 가지 단서를 통해 일정부분 이상 유추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자잘한 사이드 퀘스트의 경우 존재 자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촘촘한 서사와 인물의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엘든링'에 등장하는 NPC 토푸스.   사진=강한결 기자

기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전한 NPC는 ‘마술사 토푸스’입니다. 토푸스는 주변 인물들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엘든링 세계관 속 몇 안되는 선한 인물입니다.

토푸스와 관련된 퀘스트를 완료하면,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평온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옆에는 ‘토푸스의 역장’이라는 마술이 떨어져 있습니다. 해당 아이템에는 ‘그가 연구하던 역장은 학원에 새로운 교실을 창설할 만한 희대의 발견’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이를 확인해보려 했지만, 딱히 특출난 것이 없어서 죽어서도 무시당하는 비운의 캐릭터가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었습니다. 토푸스의 역장은 엘든링의 최종보스 ‘엘데의 짐승’의 유도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어마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 사실이 커뮤니티 등에 퍼지면서 많은 이용자는 토푸스에게 경의를 표했고, 프롬소프트웨어의 맛깔난 스토리텔링 방식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불친절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에 거부감을 보이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프롬소프트웨어는 UI(사용자 인터페이스), UX(사용자 경험) 디자인도 불친절한데다가 스토리텔링도 대강 던지듯이 만들어놓는다”면서 “그런데도 팬들은 이를 훌륭하다면서 엄지를 치켜세운다”고 비판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불친절함에도 프롬소프트웨어식 스토리텔링이 매력을 주는 것은 디테일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세하고 짜임새 있는 세계관을 만들었지만, 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잘게 쪼개서 이곳저곳에 숨겨놓은 것이죠. 하나로 모으기는 어렵지만 원재료가 훌륭한 만큼 완성하면 맛있는 요리가 되는 셈입니다.

엘든링 출시 이후 '빛바랜 자'로 살아가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정말 매력적인 스토리를 접한 적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신작게임의 스토리를 보면 설정과 세계관은 다르지만, 플롯의 형태는 판박이처럼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막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주인공이 우연히 모험에 휘말리게 되고, 어쩌다 용병단에 합류해 흑막을 만납니다. 주인공은 악의 세력을 무찌르기 위해 수련에 정진합니다. 이전에는 강력한 주인공이 힘을 잃고 초보자로 돌아간다는 설정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죠.

한국 게임의 스토리가 모두 똑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세계관과 스토리는 모두 독창적인 맛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조리하느냐가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이버섯, 대게, 2+ 한우 꽃등심 등 아무리 맛있는 식재료가 있어도 맨날 라면에 넣고 끓이면 그냥 조금 맛있는 라면이 될 뿐이니까요.

아,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 기자는 라면을 정말 사랑합니다. 다만 저런 고급 식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서 즐기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

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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