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심각한 산업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률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 도입됐지만 현장엔 여전히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빈번하다. 법 취지엔 공감하지만, 표현이 모호하고 기업에 적용하기엔 현실을 고려 안 한 요소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쿠키뉴스는 법 시행 100일을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CCMM 빌딩에서 ‘윤석열 시대 – 중대재해처벌법 향배는?’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인사말로 포럼을 연 김지방 쿠키뉴스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우리 사회 의지가 담긴 중요한 법이지만 여전히 논란 중심에 있다. 입법과 시행까지 사회 곳곳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라며 “포럼이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즐겁게 일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음이 모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송석준 의원(국민의힘)은 “더 이상 사고로부터 위협받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포럼이 중요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축사를 전했다.
발제자인 권오성 교수(성신여대)는 법에 명시된 “‘경영책임자’를 엄격하게 해석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규범의 차원에서 판단해야한다”라며 “법인 설립근거 법령과 정관 등에 따라 법인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동시에 대내적으로 사업을 총괄하는 ‘법률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제언했다.
중처법 수검(검사나 검열 따위를 받는 것)대상은 △대표이사 등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대표이사 등에 준하는 책임자로서 사업 또는 사업장 전반의 안전·보건 관련 조직·인력·예산을 결정하고 총괄 관리하는 사람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지방공기업·공공기관의 장 △개인사업주 등이다.
수검대상에 언급된 ‘대표이사 등에 준하는’이라는 문구에 관해 권 교수는 “문언 상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 준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또는’ 이라는 문구도 전단과 후단을 선택적으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다음 이어진 전문가 토론에선 경영계와 노동계, 학계 대표자 참석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산업안전팀장·한상준 대한건설협회 산업본부 기술안전실 부장·노상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노동위원·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고영욱 유한대 산업안전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좌장은 오태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가 맡았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법 취지는 동의했지만 시행령엔 입장차를 보였다. 경영계는 법이 불명확하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만큼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확보의무체계 마련이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전승태 한국경총팀장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 기준 등이 모호하다”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와 법인에게 매우 엄격한 만큼 처벌 적용대상과 구성요건이 더 엄격해하는데 오히려 산안법보다 적용대상이 더 넓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용범위를 법 취지에 맞게 엄격하게 규정하고 직업성 질병은 반드시 중증도 기준이 마련돼야한다”고 주장했다.
한상준 대한건협 부장은 “애초 법사위에서는 처벌 대상자가 ‘또는’이 아니라 ‘및’이었는데 과정을 거치면서 ‘또는’이라는 모호한 말로 바뀌었다”며 “의무내용도 안전·보건 관계 법령, 원청 책임범위 등이 구체화하도록 법률과 시행령을 재개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잘 작동하지 않아 중처법이 도입됐다고 주장했다. 최근 3년(2018~2020년)간 산안법 위반사건 처분결과를 보면 징역·금고형 818건 중 실형은 4.5%에 불과했다.
서강훈 한노총 본부장은 “경영계가 주장하는 산안법의 높은 법정형은 대부분 불기소 처분되고 금고형 이상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비판엔 “안전보건 관계 법령은 필연적으로 포괄적이며 광범위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경향은 보통 재난의 사후조치 격으로 추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상헌 경실련 노동위원은 “현장 안전 관리자에게만 책임을 묻기보다 톱다운 방식으로 오너가 책임의식을 갖고 개선을 해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 문제가 바뀐다”며 “최고경영자가 안전 제고할 때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 교수는 기업이 안전보건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 및 보완이 이뤄져야 중대재해 예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건설사도 안전 관리자를 확보하기 어려운데 그보다 작은 회사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안전 관리자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중대재해 예방이 가능할까 싶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예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