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맛있어야 밥맛도 으뜸…배고플 때 먹는 밥이 최고”

“쌀이 맛있어야 밥맛도 으뜸…배고플 때 먹는 밥이 최고”

쿠첸 ‘밥 소믈리에’ 인터뷰

기사승인 2022-04-30 09:47:01
쿠첸 ‘밥 소믈리에’ 3인이 29일 쿠첸 121 밥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다해 선임연구원, 민윤경 선임연구원, 이미영 책임연구원)

한국인의 힘은 밥심이다. 우리나라 연간 쌀소비량은 지난해 1인당 약 57kg정도다.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반토막 났지만, 따끈한 밥 한숟가락은 허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뜨끈한 기운도 북돋아 준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도 전문가 손길이 닿으면 맛이 달라진다. ‘밥 소믈리에’가 그들이다. 밥 소믈리에란 ‘쌀과 밥 전문지식과 품종별 맛을 구별할 수 있는 섬세한 미각을 가진 자’에게 수여하는 자격이다.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국내에서 밥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사람은 70여 명 정도다.

29일 충남 천안시 쿠첸 ‘밥맛 연구소’에서 만난 3인(이미영 책임연구원·민윤경 선임연구원·홍다해 선임연구원)도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밥 소믈리에다. 이들은 각각 2018년과 2019년에 공인 자격을 취득하고 밥맛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밥에 진심인 사람들

밥 소믈리에 또는 밥 감별사가 되는 방법은 한 가지다. 일본취반협회가 발급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면 된다. 그래서 자격명도 ‘고항(ご飯·밥을 뜻하는 일본어) 소믈리에’다. 취득 절차가 까다롭다. 매년 3월에 시험을 치르는데 협회가 당 해년도 교육 자료를 미리 발송한다. 일본어로 된 자료를 숙지하고 시험도 일본어로 진행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현지에서 이틀간 교육을 받는다. 쌀 품종·도정기술·취반제품 관리요령 등을 배운다. 필기와 실기를 모두 통과해야만 증서를 받는다.

쿠첸 밥 소믈리에 주 업무는 알고리즘 개발이다. 실험계획을 세우고 취반(쌀 계량·세척)과 보온실험으로 모인 데이터를 분석한다. 데이터로 메뉴별 알고리즘(가열량·작동시간 등 제어)을 만든다. 찰진 밥을 기준으로 현미·잡곡 등 곡류와 메뉴에 맞게 알고리즘을 세분화한다. 이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돼야만 맛있는 밥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연구소에 따르면 10인용 기준 밥솥 새 제품을 하나 개발하는데 120일이 걸리고, 쌀 5400인분이 쓰인다.

이 연구원은 “실험 계획을 세우고 취반, 구동하면서 원하는 대로 소비전력이 들어가는지, 온도는 올라가는지, 출력이 정확한지를 수집, 분석 한다”며 “메뉴하나를 개발하는데 그래프를 적어도 수백 개 그린다”고 설명했다.

밥 소믈리에는 메뉴를 개발하면서 수시로 밥을 먹는다. 제법 물릴 법도 한데 그래도 직접 만든 밥이 맛있단다. 이 연구원은 “실험용 밥만 먹어도 맛있다”며 “한 번은 너무 맛있어서 밥만 퍼먹었다”고 말했다. 와인 소믈리에가 맛으로 포도 품종을 구별하듯 이들도 밥맛을 구별할 줄 안다. 식감도 마찬가지다. 홍 연구원은 “쌀 종류는 물론 취사, 알고리즘 메뉴마다 조금씩 밥맛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기자도 보온 실험중인 밥을 먹어봤다. 쫀득하면서 스팸 한 조각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이 연구원은 식감을 알 수 있는 비결로 교육과 훈련을 꼽았다. 그는 “계속 밥을 먹어보고 평가하는 걸 교육 하는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결국 교육이고 훈련”이라며 “자문을 구할 때 주로 논문을 참고하는데 5년 전, 10년 전 자료인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쌀 전문 연구기관 등 인프라가 갖춰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일본취반협회가 발급하는 ‘밥 소믈리에’ 인증서. 

밥맛 좌우하는 1순위는 ‘쌀’

밥 전문가가 말하는 밥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쌀’이다. 홍 선임은 “쌀이 등급마다 다르고 종류도 다양하다”며 “좋은 쌀을 쓰면 무조건 맛있는 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밥을 지을 때 쌀 분량은 계량컵으로 조절하면 가장 정확하다. 이때 쌀이 수북하거나 부족하면 물 비율이 안 맞아 밥이 질거나 될 수 있어 주의해야한다.

물도 표시된 눈금에 맞추면 된다. 요령을 더하면 개봉한지 2~3주가 지난 쌀은 금방 마른다. 이 쌀로 밥을 지을 땐 기준 양보다 물을 조금 더 넣으면 좋다. 반대로 갓 도정한 쌀은 수분함량이 높기 때문에 평소보다 물을 적게 넣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쌀 보관도 강조했다. 쌀 보관 시기와 방법에 따라 밥맛이 바뀔 수 있어서다. 싱크대 밑 등 습한 곳을 피해 가급적 짧게 보관하라고 조언한다.

이 연구원은 “쌀 상태는 계속 바뀐다. 색깔도 까매진다. 그런데 쌀을 사서 오래 먹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며 “방금 산 쌀과 3개월 지난 쌀로 만든 밥맛이 다른데, 사람들은 쌀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밥솥이 고장 났다고 오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알고리즘이 좋아도 쌀 상태에 따라 맛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2~3주내로 먹을 만큼만 사면 늘 신선하고 똑같은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밥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배고플 때’다. 금방 만든 밥을 배고플 때 먹으면 금상첨화란다.

민윤경 선임연구원이 29일 쿠첸 밥맛 연구소 내 국내 쌀 대표 산지 게시물을 소개하고 있다. 

하루 종일 밥 짓는 연구소

쿠첸이 만든 밥솥은 모두 밥맛 연구소를 거친다. 소비자를 만나기 전 통과의례인 셈. 국내 최초 2.1 초고압을 자랑하는 ‘121’ 밥솥도 이 곳에서 탄생했다. 연구소답게 값비싼 장비도 많다. 영하 30도 극한 환경을 구현해 테스트할 수 있는 ‘챔버룸’을 비롯해 쌀이 얼마나 딱딱하고, 부드러운지 수치화하는 기기 등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보안이 철저하다. 연구소 관계자 외에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연구소에선 밥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기 위해 하루 종일 밥을 짓는다. 그래서 늘 구수한 밥 냄새로 가득하다. 연구소가 아니라 큰 주방 같다. 수시로 밥솥이 내뿜는 김에 놀랄 법도 한데 연구원들에겐 소소한 일상이다. 연구소는 메뉴를 개발할 때 시중에 나온 ‘혼합미’를 쓴다. 쌀이 여러 종류 섞인 혼합미는 단일품종보다 저렴하다. 단일품종은 비싼 대신 맛을 보장한다. 소비자가 구하기 쉬운 쌀로도 맛있는 밥을 만들자는 게 이곳 목표다.

늘 밥에 진심이지만 때론 그들도 일탈을 꿈꾸지 않을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평소엔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매월 한 번꼴로 ‘외식’도 한단다. 홍 연구원은 “오늘(29일) 점심으로 파스타와 리조또를 먹었다”며 웃었다. 볶음밥에 대해 민 연구원은 “가끔 일탈할 때 먹는 밥”이라고 답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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