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냐, 헌법 가치냐. 그룹 방탄소년단 입영 문제로 촉발된 대중문화예술인 병역 특례 문제를 두고 대중문화계와 국방 전문가들 의견이 갈렸다. 대중문화예술인을 예술요원에서 제외한 현행 법령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데는 양쪽 모두 동의했지만, 예술요원 등 보충역을 확대해야 하느냐를 두고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국회 국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실이 12일 국회에서 주최한 ‘병역특례 개선 방향 대토론회’에서다.
“국위 선양·문화 창달 확실한데 대중문화 역차별”
현행 병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보충역으로 편입되는 예술요원에 가수와 배우 등 대중문화예술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중문화계는 이를 역차별로 규정하며 예술요원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경 한국매니지먼트연합 국장은 “기존 예술체육요원 취지인 국위선양과 문화 창달에 있어서 대중문화예술인은 충분히 (예술요원으로 편입될) 명분을 갖고 있으며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됐다”며 “대중문화예술인의 대체복무는 국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이 인용한 해외한류실태조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1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 연상되는 이미지로 K팝이라고 답한 해외 18개국 현지인은 전체의 14%로, 한식·드라마·IT/브랜드 등을 모두 앞섰다. 리얼미터, 한국갤럽 등이 실시한 한국인 여론조사에서도 ‘BTS의 대체복무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10명 중 6명꼴로 나왔다.
체육계에 비해 대중문화예술인을 향해서만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 당시엔 체육요원 기준이 쉽게 바뀌었는데, 대중문화예술인을 논의할 땐 이런 지난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대중문화예술인을 ‘딴따라’라고 폄하하곤 했다”며 “달라진 대중문화의 위상을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짚었다.
만약 대중문화예술인을 예술요원에 포함시킨다면, 특기자 선정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논쟁거리다. 빌보드 순위나 그래미 어워즈 등 해외 차트 혹은 시상식 결과를 기준으로 삼기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국장은 현행 연기제도에 따른 기준, 즉 문화 훈·포장으로 예술요원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현재까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대중문화예술인 중 이 기준을 충족하는 이는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뿐이다.
역차별 주장에 공감하지만…“현역병과 형평성은?”
국방 전문가들은 대중문화예술과 순수·전통예술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면서도, 예술요원 확대를 두고는 입장 차를 보였다. 출생률 감소로 병역자원이 감소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오히려 보충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군은 병역판정검사를 완화해 현역 판정률을 높이고, 보충역인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승선근무예비역 등도 차차 줄여갈 계획이라고 모종화 전 병무청장은 설명했다.
한국국방연구원 박문언 병영정책연구실장도 “예술·체육요원 수가 적어 병력 보충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해도, 이로 인한 현역 복무와의 형평성 문제는 그대로 존재한다”며 “보충역 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예술·체육요원 제도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대체역 심사위원장을 지낸 진석용 대전대 교수 역시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비군사적 대체복무 제도를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병역 의무는 국방의 필요성 때문인데, 그 의무 이행을 공익에 봉사하거나 학술 및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것, 혹은 국위선양 활동으로 대체하게 하는 것은 헌법 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징병제도의 의의는 고역의 평등이 아니라 국방의 필요에 있다”고 강조했다.
징병제 시행 중인 다른 나라는 어떨까
징병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는 대체복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이스라엘의 경우, 운동선수가 체육부대에서 대체복무할 수 있도록 한다. 가수 등 음악가들은 오디션을 통과하면 군 복무 중에도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스위스는 군 면제자에게 만 30세가 될 때까지 소득의 3%를 병역세(국방세)로 내게 한다. 터키와 그리스에서도 기여금이나 병역세를 내면 군 복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해주거나 혜택을 주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징병제를 택한 13개국 가운데 한국뿐이다.
박 실장은 “만약 대체복무 제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현역 복무와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는 예술·체육요원에게 병역세와 비슷한 세금을 부과하거나 자발적인 기부를 유도해 병역의무 이행자를 위해 사용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