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얼굴 가리고 싶어” 화장하는 그루밍족
대학생 A씨가 화장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입대 이후다. 당시 휴가를 받아 만난 친구 얼굴이 달라졌다. 그날따라
잘생겨 보였던 친구. 비결은 화장이었다. A씨도 훈련 탓에 그을린 피부를 가리고 싶었다. “친구 얼굴을 보고 화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A씨는 말했다.
A씨는 피부화장만 한다. “파운데이션이랑 비비가 같이 있는 기능성 화장품 바르기, 눈썹 그리기 그 정도만 해요.” 처음 하는 화장이 어렵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해서 수월했다고 했다. 음영을 넣어 얼굴에 입체감을 주는 섀도잉에도 관심이 있지만, 색조 화장은 하지 않는다. “어색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화장한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화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도 대부분 “괜찮다.”, “잘 됐다.”고 이야기한다. 주위에 화장하는 친구들이 늘기 시작했다.
젠더리스 화장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는 A씨. 그에게 화장은 관리의 일환이다. “꾸미는 것이 자기관리이기도 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화장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치 볼 필요도 없다는 거죠.”
“화장품이 좋아서요” 늘어나는 남성 뷰티 블로거
‘화장품을 좋아한 지 13년, 화장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 남자’ 화장품 블로거 B씨의 소개는 이렇다. 각자의 피부타입에 맞는 화장품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한 블로거의 글을 보고 화장품을 사러 갔는데 개인차가 크더라고요.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효과는 피부 타입에 따라 달랐던 거죠. 다른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출근할 때는 파운데이션에 투명 립밤을 바른다는 B씨. 외부 일정을 나갈 때는 조금 더 특별한 화장을 한다. “거래처 직원을 만날 때는 윤곽을 살리려고 컨투어링이랑 아이브로우, 말린 장미색 계열의 립밤을 사용합니다.”
화장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특별한 게 아니다. “화장을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면 좋은 정도. 얼굴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으니까요. 일상에 재미를 주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물론 불편한 시선도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BB크림을 바르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도 당황스러워하긴 하셨죠. 하지만 지지받는 경험이 더 많았어요. 저희 담임선생님은 자기결정도 하고 대견하다고 해주셨죠. 대학 친구들도 화장하는 걸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유별나게 보지는 않았어요.”
화장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사회 편견을 그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화려한 화장을 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따가운 시선 탓도 있다는 것이다. B씨는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있어서 밖에서 화장을 고치는 건 더 조심스럽다.”며 “밖에서 수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화장을 주로 한다.”고 전했다.
B씨는 화장은 성별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본인을 가꾸는 수단일 뿐이라며 타인의 생활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장도 나를 표현하는 수단, 드랙 아티스트
드랙 아티스트 하누바(Hanuva)씨에게 화장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드랙 아티스트는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 과장된 화장과 패션, 퍼포먼스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를 말한다. 하누바씨가 드랙 아티스트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어서다.
자연스러운 게 중요한 다른 남성들의 화장과 달리 드랙 아티스트의 화장은 ‘화장한 티가 난다’. 개성을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화장 탓에 차가운 시선을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하누바씨는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혐오는 혐오하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 역시 온라인상에서 악플을 받으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하누바씨는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화장을 하고 싶어도 차마 용기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하누바씨는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 병이 된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응원을 건넸다.
김지원 쿠키청년기자 elephant07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