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주식시장이 연일 하락하자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공매도의 순기능이 있으므로 금지보다는 외국인과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조건을 같게 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장 종료 기준 공매도 거래대금은 4947억원(전체 거래대금 대비 약 3.49%)으로 전 거래일 대비 약 1069억원 감소했다. 지난 16일 기준 올해 공매도 거래대금은 53조8893억원이다.
이달 13일부터 21일까지 7거래일 기준 공매도 거래대금은 3조 6563억원에 달한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재점화한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9일에는 약 7750억원이 몰렸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3만 선 아래로 내려앉은 17일에는 7723억원의 공매도가 쏟아졌다. 이 기간 코스피·코스닥지수는 각각 7%, 9%가량 빠졌다.
공매도 잔고는 주식을 빌려 팔았지만 아직은 갚지 않은 금액이다. 이후 공매도한 종목의 주가가 내려가면 투자자는 앞서 매도한 주식을 환매수하고 빌린 주식을 갚는다. 주가가 비쌀 때 팔고 쌀 때 사서 되갚아야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그간 공매도가 집중됐던 종목 위주로 숏커버링(공매도 상환)이 이뤄지고 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HLB, 씨젠, 알테오젠 등 코스닥 바이오주의 공매도 잔고가 지난달 말 대비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 역시 숏커버링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말 삼성전자의 공매도 잔액 수량은 769만9848주로 잔액 금액은 519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 8일 기준으로는 658만6006주(4301억원)까지 빠르게 감소했다.
전날 4% 넘게 급락하며 10만원 밑으로 떨어진 SK하이닉스 역시 지난달 말 150만2742주에서 지난 8일 88만4939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HLB와 씨젠, 알테오젠 등 바이오 업종에서 주로 숏포지션 청산이 이뤄졌다. HLB의 공매도 잔액 수량은 지난 8일 기준 486만8600주로 지난달 말 501만6987 대비 15만주 가량 줄었으며, 씨젠의 잔액 수량은 252만6569주에서 236만989주로 감소했다. 알테오젠 역시 131만9326주에서 129만2590주로 줄어들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를 다시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코스피 2400선, 코스닥 800선 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개인투자자, 공매도 ‘반대’ 목소리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공매도에 대해 한 누리꾼은 “공매도 쳐놓고 애널리스트를 동원해서 실적 전망 어둡다고 선동하고, 실적이 좋으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고 말한다”며 “공매도 허용하려면 (외국인에 대해) 3개월 안에 상환시키고 늦을 때마다 수수료 누진제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말만 국민이 우선이다 하면서 공매도 환영하는 건 증권사밖에 없다. 주식 교란을 위해 공매도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공매도가 있어서 주식이 교란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고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공매도가 하락 폭을 더 키우고 있다”며 “공매도 한시적 금지는 현시점에서 조금 이를 수 있지만 미리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우리나라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외국인의 수급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선진국 대비 취약한 주식시장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개인의 공매도 거래방식이 외국인·기관보다 불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매도 거래는 주식 대차와 신용대주로 구분된다.
외국인과 기관은 주로 주식 대차를, 개인은 신용대주를 이용한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주식 대차는 대여 기간이 최대 1년이지만 협의에 따라 계속해서 리볼빙(일부결제이월약정)이 가능하다. 사실상 기한 제한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신용대주는 대여 기간이 최대 3개월(90일)로 제한된다. 갚아야 할 기간이 짧으므로 외국인·기관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 쉽지 않다.
수수료도 주식 대차가 연 0.1~5%로 신용대주(연 2.5% 이상)보다 낮은 편이다. 담보 비율 역시 개인투자자는 140%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105%로 높다. 증거금 없이 공매도 레버리지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담보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반대매매(임의 처분)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므로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이러한 위험을 안고 공매도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정 대표는 “개인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관 외국인을 90일이든 120일이든 딱 강제 상환하게끔 바뀌어야 한다. 또한 공매도 상환하면 1개월간은 재공매도를 못하는 단서 조항을 좀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공매도로 합리적 가격 형성
이에 전문가들은 공매도의 순기능도 있으므로 외국인의 공매도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보다 개인 투자자들의 조항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교수는 “외국인이 우리나라 전체 주식 시장의 약 30%를 가지고 있는데 공매도를 못 하게 하면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면서 “주가가 충분히 하락하면 공매도를 통해 반등할 기회가 마련된다. 공매도가 시장의 합리적 가격 발견하게 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투자자나 외국인이 똑같은 조건에서 공매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에게 최소한 3년에서 5년까지 보라고 하는데 3개월로 공매도의 추이를 보기에는 짧다. 개인에 대해서도 외국인과 똑같이 기간을 늘려주는 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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