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이 대출을 받은 후 주식 또는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투자금을 잃고 개인회생을 신청할 경우 해당 손실금은 갚아야 할 돈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업무 기준을 마련한데 논란이 커지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이달부터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 제408호’를 시행한다.
준칙은 “주식 및 가상화폐 투자 손실을 입은 채무자들이 개인회생신청을 한 경우 변제금의 총액을 정함에 있어 그 손실금의 액수나 규모를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다만 투자 실패 명목으로 한 재산 은닉이 의심될 경우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이 이런 지침을 마련한 건 가상화폐 등 투자실패로 인한 20·30대 청년층의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다 개인회생 신청 또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회생실무 개선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한 회생법원은 “개인회생절차에서 채무자가 변제하여야 하는 총 금액이 투자 손실금보다 무조건 많아야 한다는 논리로 채무자들에게 제약을 가하고 있는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개인회생은 채무자 재산 총액이 전체 빚 규모보다 작을 때에만 허용된다. 그간 서울회생법원은 주식·가상화폐 투자 손실액도 채무자 재산 총액에 포함해 왔다. 처분해야 할 재산이 많으면 갚아야 할 금액도 늘어나는데 이달부터는 가상화폐 등 투자금도 자동차나 부동산처럼 현재 가치로 산정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의 재산있는 투자자 A씨가 3000만원을 대출받아 가상화폐에 전부 투자했다가 모두 잃어도 1000만원의 재산이 남게 된다. 이번 준칙에 따라 이 투자자의 청산가치는 종전 방식으로 계산한 4000만원이 아닌 1000만원이 된다.
현재 가치를 기준으로 A씨가 갚을 수 있는 총 변제액이 청산가치인 1000만원보다 높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회생 계획을 인가한다. 결국 A씨는 회생계획에 따른 변제액만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받는다. A씨가 회생계획을 인가받은 뒤 보유한 가상화폐 가치가 오르더라도 채권자가 이를 환수할 수 없다는 부분도 논란의 대상이다. 채권자 입장에선 A씨가 변제 가능한 상황이 돼도 돈을 돌려 받기 힘든 셈이다.
이에 대해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30대 직장인 김정환 씨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투기로 빚을 진 사람 대신 돈을 빌려준 사람이 투자 리스크를 왜 짊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주식 투자도 하곤 있지만 재산 한도 내에서만 투자한다. 손해가 나더라도 알아서 책임지기 위해서다. 주택담보대출, 생활비, 자녀 학비 등에 쓰려고 대출받아 꼬박꼬박 갚는 사람들 입장에선 억울하지 않겠나” 지적했다.
직장인 유지연(36·여) 씨는 “주식·가상화폐를 위해 대출을 받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빚내라고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며 “대출 받아 가상화폐 등에 투기해 이득을 보든, 손해를 봐서 개인회생 신청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누리꾼은 관련 뉴스 댓글을 통해 “30대 중반인 지인이 유튜버한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카드 빚으로 생활하다 빚만 7000만원이 넘어 법원에 갔다”며 “법원은 3년간 한달 29만원씩 잘 갚으면 그 빚을 다 탕감해준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며칠 내내 허무하고 화가났다. 평범히 열심히 사는 우리들은 사회의 호구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회생·파산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에 살 걸 그랬다” “코인·주식 채무자는 전국에 있는데 서울만 혜택 받는 것 아니냐” “자산의 변동성이 같지 않은데 부동산과 코인·주식을 같은 기준으로 적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 등 반응이 나왔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