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룹 소녀시대도 그렇다. 2007년 데뷔한 신인 그룹은 수많은 하루아침을 지나 K팝 전설이 됐다. 소녀시대가 만인의 친구이자 우상이 되기까지, 여덟 멤버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그동안 발표한 대표곡으로 돌아봤다.
‘다시 만난 세계’
2007년 8월3일 발매된 소녀시대의 데뷔곡. 애초 ‘다시 만난 세계’는 배우 서현진이 속했던 그룹 밀크의 2집 타이틀곡으로 낙점된 노래다. 하지만 팀이 갑작스레 해체돼 주인을 찾지 못하고 4년 여간 떠돌았다. 가까스로 세상에 나왔지만, 처음부터 사랑받진 못했다. 당시는 ‘거짓말’(빅뱅), ‘텔 미’(원더걸스) 등 후크송이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서정적인 선율이 강조된 ‘다시 만난 세계’는 유행과 동떨어졌다. 일본 아이돌 팝을 모방했다는 지적에도 시달렸다. ‘다시 만난 세계’를 K팝 명곡으로 끌어올린 건, 팬덤이 아닌 이 곡과 한 시절을 함께 보내며 감성을 공유한 일반 대중이었다. 벅찬 느낌을 주는 사운드, 작사가 김정배가 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헤쳐나가라’는 가사는 ‘다시 만난 세계’를 연대와 투쟁의 장소로 불러 들였다. 우여곡절 많던 이 노래는 가사 내용처럼 역경 속에서 마침내 생명력을 얻었다.
‘지’(Gee)
2009년 1월5일 발매된 소녀시대 미니 1집 타이틀곡. 소녀시대는 이 곡을 메가 히트시키며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앞서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 ‘키싱 유’(Kissing You) 등 선율이 도드라진 노래를 주로 발표했던 소녀시대는 ‘지’를 통해 후크송(후렴이 짧게 반복되는 노래) 전성기를 열어 젖혔다. 귀에 금방 꽂히는 후렴은 K팝에 친숙한 젊은층을 넘어 중장년층도 사로잡았다. 덕분에 ‘지’는 발매된 해뿐 아니라 2000년대를 통틀어 가장 히트한 음원으로 자리매김했다(음원사이트 멜론 집계). 당시 소녀시대의 높은 인기는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소녀시대와 ‘지’가 각각 ‘올해의 가수’와 ‘올해 최고 인기곡’ 1위에 올랐다. K팝 주소비층이 아니던 30·40대 남성이 ‘삼촌팬’으로 떠오른 것도 이 때부터다. 당시 한국갤럽 조사에서 10~40대 남성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좋아하는 가수로 소녀시대를 꼽았다.
‘미스터 택시’(Mr. Taxi)
2011년 4월27일 일본에서 발매된 싱글. 2010년 일본에 진출한 소녀시대가 현지에서 내놓은 첫 일본 오리지널 곡이다. 앞서 ‘지’ 일본어 버전이 실린 싱글로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 6만6000장을 기록했던 소녀시대는 ‘미스터 택시’ 싱글로 초동 10만장을 돌파하며 주가를 높였다. 소녀시대는 같은 해 5월 시작한 첫 일본투어에서 약 14만 관객을 동원했고, 투어 중 발표한 일본 정규 1집은 K팝 걸그룹 최초 오리콘 주간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2012년 오리콘에 따르면 소녀시대는 그 해 일본에서 음반·DVD 판매로만 43억3200만엔(약 555억)을 벌어들였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한 K팝 가수 중 가장 높은 매출액이었다. 소녀시대는 이후로도 일본 ‘꿈의 무대’로 불리는 도쿄돔(수용인원 최다 5만명) 공연을 포함해 세 차례에 걸쳐 현지 투어를 열었다. 누적 관객수는 80만명을 넘었다.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
2013년 1월1일 발매된 소녀시대 정규 4집 타이틀곡. 5분 가까운 재생 시간, 여러 곡을 합친 것 같은 구성, ‘어머 얘 좀 봐라 얘’ ‘깜짝 멘붕이야’ 같은 대화체 가사로 공개 초반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난해한 도전은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장르를 혼합한 혼종성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K팝만의 특성으로 여겨졌다. ‘아이 갓 어 보이’도 재평가 받았다. 빌보드는 2010년대를 정의하는 노래 100곡 중 하나로 ‘아이 갓 어 보이’를 꼽으며 “독창성이 장르의 제한이나 개인의 예술적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을 때 어떤 결과물이 탄생하는지 세상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여러 음악 요소가 뒤엉킨 ‘아이 갓 어 보이’의 특징을 “미래 음악 산업이 지행해야 할 지표”이자 “21세기 음악적 실험주의의 한계를 더욱 확장했다”고 본 것이다. 이밖에도 ‘아이 갓 어 보이’는 미국 타임이 선정한 ‘2013년 올해의 노래 톱10’, 빌보드가 꼽은 ‘역대 전 세계 걸그룹 노래’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