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없이도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운용 방법으로 투자 상품을 자동으로 선정, 운용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 선택지는 △TDF △장기 가치상승 추구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인프라 펀드 △원리금보장 상품 등 다섯 가지다.
이 중 TDF는 노후 자금 투자에 특화돼 있어 디폴트옵션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TDF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연금 자산 형성과 관리를 위해 생긴 TDF는 투자자의 은퇴 예정 시점을 기준으로 생애주기에 따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알아서 투자해 주는 상품이다. 예컨대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위험자산인 주식의 비중을 줄이고,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다.
변재일 한화자산운용 WM솔루션운용팀장(펀드매니저)는 “주식으로 장기간 운용해 자산을 늘리고, 특정 시점 이후에는 자산을 지키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은퇴 시점이 되면 3대 7이나 2대 8 정도 채권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된다”라고 말했다.
TDF는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상품이다. 변재일 팀장은 “TDF는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맡겨놓은 자산을 잊어버리고 본인 일에 집중하고 싶은 투자자들에게 가장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금을 한 번에 넣거나 월급 일부를 계속 적립하면 된다. 시장에 상관없이 꾸준히, 장기 투자해 이익을 얻는 것이 TDF의 가장 큰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원금 보장형은 금리 대비 손해
주가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원금 보장형 비중이 높은 은행과 생명·손해보험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선방하고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TDF 또한 경제 상황에 따라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러나 수익률 높지 않을 때가 가입 ‘적기’라고 조언했다.
변 팀장은 “TDF에는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장이 안 좋으면 당연히 수익률 안 좋다. 그러나 수익률이 안 좋은 기간을 활용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면서 “수익률이 높을 때 대부분 고객이 비싸게 자산을 매입한다. 시장이 안 좋아지면 돈을 안 넣기 때문에 싸졌을 때의 자산을 못 산다. 시장에 상관없이 정해진 금액을 꾸준히 넣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현행 퇴직연금은 안전자산 선호로 수익이 낮은 편이다. 2020년 퇴직연금 적립 금액의 89.3%(대기성 자금 포함)는 원리금 방식으로 운용돼 적립금의 10.7%(27조4000억원)만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한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지난 2016~2018년 3년 평균 1.49%로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률 3.68%보다 낮다.
이와 관련해 변 팀장은 원리금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자산의 가치는 깎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면 시장 금리밖에 받지 못한다”면서 “위험자산에 투자하면 위험자산이 주는 리스크 프리미엄,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연금 계좌를 통해 연금 자산을 축적할 경우 세금 이연이 돼 장기투자와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면서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으로 위험자산을 섞어 연금 자산을 관리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TDF 상품을 고를 때는 자산배분 룰을 잘 지키는 운용사인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 팀장은 “금융사마다 운용하는 뼈대는 비슷하다. 글라이드패스(일종의 자산 배분 설계도면)를 잘 준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장이 안 좋다고 포트폴리오를 확 바꾸는 회사가 있다. 단기적으로 운용 전략을 바꾸는 것이 아닌 큰 원칙대로 운용하는 곳을 추천한다”고 했다.
펀드 명을 보면 ‘TDF2050’, ‘TDF2035’와 같이 숫자가 들어가 있다. 이는 은퇴 시점의 연도를 의미한다. 뒤에 숫자가 클수록 은퇴시기가 많이 남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2050이 2035보다 주식 비중이 높다. 숫자가 작을수록 채권 비중이 높다.
변 팀장은 “꼭 이 숫자에 맞게 가입할 필요는 없다. 대략 20년 정도 일할 것 같은데 본인이 리스크를 더 지는 걸 원한다면 2050에 가입할 수도 있다. 또한, 자산을 TDF와 예금에 나눠서 넣었다면 2050에 투자해도 포트폴리오는 예금이 많기 때문에 추천한다”고 말했다.
운용보수가 낮은 “TDF ETF”
TDF ET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을 배분하는 글라이드 패스의 특성과 높은 환금성, 낮은 보수, 투명성 등 ETF의 장점을 결합한 상품이다.
TDF ETF는 ETF처럼 주식시장에서 사고팔기 편해 즉각 거래할 수 있다. 펀드 판매사(증권사 등)가 가져가는 수수료도 없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환율 헤지(위험 회피) 구조로 짜인 TDF와 달리 TDF ETF는 환 노출형으로 설정됐다.
변재일 팀장은 “TDF가 완벽한 기성품이라면 TDF ETF는 커스터마이즈 된 상품이다”라면서 “TDF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보통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반면 TDF ETF는 매매 빈도가 높거나 적극적으로 투자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수익률의 우위는 상품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TDF ETF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와 TDF가 가진 리스크가 약간 다르다. 비용은 TDF ETF가 저렴하지만 어떤 전략을 어떻게 구상하는 지는 펀드마다 다르다”라면서 “어떤 상품이 수익률이 더 높은지 단편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수수료는 TDF ETF가 저렴한 편이다. 변 팀장은 “디폴트옵션이 시행되면서 TDF도 수수료를 낮추기 위해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면서 “TDF ETF가 더 저렴하겠지만 비슷한 수준의 효과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은퇴 후에는 TIF 적극 활용”
TDF에 이어 자금 인출기 최적 투자상품으로 타깃인컴펀드(TIF)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TIF는 글로벌 주식, 채권, 고배당 주 등에 분산 투자하는 글로벌멀티에셋펀드로 주식 비중을 낮게 유지한다. 정기적인 이자와 배당 수익을 추구하는 등 다소 방어적으로 설계됐다. 또한 안정적 수익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은퇴 후 인출기에 유리한 상품이다.
변 팀장은 “TDF와 TIF는 생애주기 솔루션을 완성해주는 가장 큰 두 가지 펀드다. 은퇴 전까지 TDF로 자산을 축적하고, 은퇴 후 TIF로 옮겨가 생활비를 뽑아 쓰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TIF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해 주는 수준에서 위험자산에 투자하되 변동성 관리에 중점을 둔다”면서 “변동성을 잘 관리해서 은퇴 후 자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오래오래 돈을 뽑아 쓰도록 해주는 상품”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변 팀장은 시장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수입 일부를 꾸준히 퇴직연금에 투자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장기투자를 한다면 금리 대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윤택한 은퇴 생활을 위해 보수적인 운용보다 적극적인 운용을 추천한다”고 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