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서울 한강 둔치에서 거리공연을 하던 청년은 1만 관객 앞에 섰다. “콘서트를 열고 싶다”던 오랜 꿈을 이룬 날, 청년은 눈물을 삼키고 대신 미소로 관객을 배웅했다. “이 아름다운 별(팬)들을 담기에 아직 내 우주가 모자라다”며 “더 큰 우주가 돼야겠다”는 약속과 함께. 14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공연을 연 가수 임영웅의 이야기다.
임영웅만큼 인생 역전을 한 이가 가요계에 또 있을까. 그는 2016년 노래 ‘미워요’로 데뷔했지만 금방 빛을 보진 못했다. 음악 활동만으로는 수입이 넉넉지 않아 택배 상하차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이런 그가 반전 드라마를 쓴 건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전하면서다. 짙은 감성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우승을 거머쥔 그는 순식간에 중장년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지난 5월 발매된 첫 정규음반은 일주일 만에 110만장 넘게 팔렸고, 12일부터 3일간 이어진 서울 공연은 예매 당시 최대 82만명이 예매창에 몰렸을 만큼 인기였다.
이날 공연에서도 임영웅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장이 있는 올림픽공원은 일찍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지하철 역 앞은 임영웅 관련 상품을 파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공연장 근처에선 임영웅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깜짝 플래시 몹이 펼쳐졌다. 광주에서 뭉친 팬 20여명이 틈나는 대로 모여 춤을 연습해 벌인 행사였다. 기념상품 판매 부스와 포토존은 물론, 식당과 카페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영웅시대’(임영웅 팬클럽)라고 적힌 하늘색 티셔츠 차림의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연장 주변에서 만난 배미경(52)·이순란(54)·송연미(55)씨는 “임영웅과 함께 전국을 다니고 있다”며 웃었다. 경주에서 상경해 전날 공연도 봤다는 세 사람은 “임영웅 콘서트는 봐도봐도 좋다”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려고 일찍 공연장에 왔다”고 말했다. 티켓 예매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지만 가족과 지인을 총동원한 끝에 티켓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 오는 12월 아들 결혼식을 앞뒀다는 이씨는 “아들에게 티켓을 구해주지 않으면 결혼식에 안 가겠다고 공갈 협박해 표를 구했다”며 웃었다. 이들은 “임영웅의 노래는 가슴을 울린다”며 “너무 소중해서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존재”라고 팬심을 드러냈다.
이런 팬들 마음을 아는지 임영웅은 공연을 다채롭게 꾸렸다. 그는 주특기인 트로트에만 머물지 않았다. 장엄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 오프닝부터가 그랬다. 현악기와 기타 연주가 피아노를 따라 붙으며 막을 연 공연은 여느 대형가수와 견줘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웅장했다. “다시 우리가 만나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임영웅이 정규 1집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의 하이라이트를 부르자 공연장은 순식간에 감동으로 물들었다. 티빙에서 생중계된 공연 시청률도 단숨에 치솟아 한때 96.8%를 기록했다.
임영웅은 다정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콘서트를 위해서 이 한 몸 불사르겠다”고 인사를 건넨 그는 “엄청난 폭우로 피해 입으신 분들이 많다. 어려움을 겪고 계실 분들과 복구를 위해 힘쓰시는 우리 사회 히어로(영웅)들에게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임영웅은 거침없었다. ‘오래된 노래’를 부르며 객석으로 내려가 팬들과 눈 맞춤하고 손을 잡아줬다. 임영웅은 능글맞기도 했다. 남성 관객들을 향해 “형님들 목소리로 오빠 소리를 들어보겠다”며 분위기를 달궜다. 임영웅은 변신의 귀재였다. 트로트는 물론, 발라드와 댄스곡, 심지어 힙합까지 소화했다. ‘아비안도’를 부를 땐 K팝 아이돌 스타일의 안무를 소화했고, ‘무지개’ 무대에선 한 편의 뮤지컬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101일 전 경기 고양에서 시작한 전국투어 공연이 끝을 맺는 자리였다. 팬들은 임영웅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는 영상을 준비해 공연에서 선보였다. 임영웅 몰래 진행한 이벤트였다. 감격에 젖은 그를 향해 팬들은 ‘변치 않는 마음을 약속할게’ ‘변치 않는 노래가 되어줘’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밀었다. 임영웅은 앙코르 공연 일정을 깜짝 공개하며 팬들에게 화답했다. 그는 오는 12월12~4일 부산 벡스코, 12월10~11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다시 팬들을 만난다. 임영웅은 “여러분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가수, 여러분과 항상 함께하는 가수가 되겠다”며 “오늘 공연의 모든 순간이 여러분 인생에 찬란히 빛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