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줄자 속 타는 혈액암 환자들…“제도 개선 절실”

헌혈 줄자 속 타는 혈액암 환자들…“제도 개선 절실”

백혈병에 필요한 성분채혈혈소판 헌혈량 9.8% 환자가 직접 구해
혈소판성분헌혈 증진하고 사용량 관리 필요
‘채혈장비 확충’ ‘헌혈공가제 활성화’ 등 대책으로 제시

기사승인 2022-08-17 18:22:08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쿠키뉴스와 한국백혈병환우회가 주관한 ‘지정헌혈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진=임형택 기자

 

헌혈 인구가 줄자 백혈병 등 혈액암 환자들이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환자들은 직접 헌혈자를 찾지 못하면 제때 수혈을 받지 못할 것이란 걱정까지 해야 한다. 이에 지정헌혈 관행 개선과 혈액 수급 안정화를 위한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쿠키뉴스와 한국백혈병환우회가 주관한 ‘지정헌혈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를 비롯해 △임지향 은평성모병원 진담검사의학과 교수 △박기홍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헌혈증진국 국장 △황유성 대한산업보건협회 한마음혈액원 원장 △김범준 지정헌혈 플랫폼 ‘피플’ 대표 △조건희 동아일보 기자 △김정숙 보건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 과장이 참석했다. 이성구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와 이기연 헌혈자도 참석해 지정헌혈의 어려움에 대한 현장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전체 헌혈 참여가 저조해 직접 헌혈자를 구하는 지정헌혈 사례가 크게 늘었다. 최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1만9953건이었던 지정헌혈 건수는 2021년 14만2355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2021년 전체 헌혈건수(260만4427건)의 5.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환자들은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못하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환자의 인맥이나 유명세에 따라 ‘혈액 쏠림’ 현상이 나타나 위급한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환자와 그 가족은 지정헌혈자를 구하는 시간과 스트레스가 많아 환자와 환자 보호자는 투병과 간병에 집중하지 못한다. 또 지정헌혈을 해줄 때 환자가 공여자에게 식사 접대나 교통비‧사례비를 줘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분채혈혈소판 헌혈은 전혈(적혈구제제)에 비해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백혈병 등 혈액암 환자들은 지속적인 수혈이 필요한데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2022년 기준 전체헌혈량의 9.8%를 환자와 그 가족이 직접 구하고 있다.

전혈 헌혈은 채혈 시간이 5분 내외로 짧고 보관기관도 35일로 길다. 채혈 장비 역시 전국 모든 헌혈의집‧카페에 설치돼 있다. 반면 성분채혈혈소판 현혈은 1시간3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헌혈 요건도 까다롭다. 채혈 장비 역시 전국 170개소 중 29곳에는 혈소판 채혈 장비가 없다. 혈소판 보관기간이 5일에 불과한 탓에 전혈 헌혈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안 대표는 “성분채혈혈소판 지정헌혈은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혈공가제 및 헌혈조퇴제 활성화 △혈소판성분헌혈 예약 현황 실시간 확인 시스템 도입 △혈소판 사전예약제 활용 고도화 △혈소판성분헌혈 대국민 홍보와 교육 △혈액관리법 개정 논의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분채혈혈소판 채혈장비 신규 설치 및 추가 구비의 중요성도 피력했다. 그는 “전국 총 170개의 헌혈의집·헌혈카페 중 141곳에서 성분채혈혈소판 채혈장비가 운영되고 있다. 연간 300일을 운영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전국 헌혈의집·헌혈카페에 설치된 성분채혈혈소판 채혈장비 1대당 하루에 혈소판 1개씩만 추가 채혈해도 환자와 환자가족은 지정헌혈을 통해 혈소판을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현장에서는 전혈이든 성분채혈혈소판이든 ‘적정수혈’을 통해 지정헌혈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정헌혈로 인해 과잉공급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임지향 은평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출혈로 응급 헌혈이 필요한 환자가 입원했는데, 전혈 수혈에 문제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환자 스스로 지정헌혈을 받아온 경우가 있었다”면서 “오히려 병원 혈액은행 내에서 관리하는 혈액량을 초과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지정헌혈은 환자의 위급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 혈액이 지정돼 있어 동의를 구해야만 다른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며 “헌혈이 잘 이뤄지면 지정헌혈도 자연스레 낮아진다. 많은 헌혈자가 헌혈이라는 것을 생명나눔이라고 인식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적정수혈’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정숙 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 과장은 “지정헌혈은 수급이 어려운 혈액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제한적으로 시행된 정책이다. 다만 최근 코로나19로 지정헌혈이 증가한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혈액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범부처 국가 혈액추진협의회를 구성하는 등 각 부처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는 의료기관에 수혈관리실과 수혈관리위윈회를 설치해 의료기관이 혈액사용량을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확대 설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지정헌혈을 개선하기 위해선 헌혈을 증진하고 의료기관의 사용량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환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의료기관에서 혈액 사용량과 지정헌혈에 관한 내용을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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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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