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경제’가 불러온 MZ ‘대행 서비스’

‘게으른 경제’가 불러온 MZ ‘대행 서비스’

사소한 일상까지 아웃소싱 이용
“1인 가구 증가, 편의성 추구 영향 커”

기사승인 2022-08-19 06:00:35
“샤넬, 롤렉스 줄서기 대행입니다. 폭우가 내리고 폭염이 와도 지각, 펑크 일절 없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줄서기로 허비될 수는 없잖아요? 그 줄서기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17일 오후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올라온 ‘줄서기 대행’ 게시글 중 일부다.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줄서기 대행 서비스는 흔한 일이 돼버렸다. 최근에는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지역 맛집 줄서기를 대신해주는 대행 알바도 성행하고 있다. 

중고나라에 올라온 대행 서비스의 게시물만 이달 기준 80여개에 달했다. 중고나라와 함께 대표적인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영화 예매 대행부터 해외 직구 구매 대행, 자동차 검사 대행 게시글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기사 내용과 사진은 무관. 사진=박효상 기자
최근 간편함과 시간을 돈으로 사는 소비 행태인 ‘레이지 이코노미’(lazy economy) 현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라이프스타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 이 현상이 확산되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이다.

레이지 이코노미는 ‘게으른 경제’라는 뜻이지만, MZ세대들에게는 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주는 서비스로 통한다. 대표적으로 배달의 민족, 마켓컬리 같은 배달 서비스와 청소나 세탁 등 가사 대행 서비스가 있다. 

줄서기 대행이나 앱·구독 서비스 등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재활용 쓰레기부터 음식물까지 처리장에 직접 가져다주는 생활 쓰레기 통합처리 서비스나 건강을 위해 필수로 챙겨 먹는 영양제들을 인공지능이 큐레이션해 구독 배송해주는 서비스 등이 레이지 이코노미의 사례다.

최근에는 페어링을 통한 스마트폰 리모컨과 집 앞까지 와서 노동을 줄여주는 통합처리 시스템처럼 유무형을 넘나들며 서비스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이전까지는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의류 건조기와 같이 가사노동의 편리함만 가져다주는 가전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사소한 일상까지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는 1인 가구 증가로 집안일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귀차니즘 소비 트렌드가 확산된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게으름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대부분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의 게으름이야말로 혁신과 효율을 증진하는 촉매제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MZ세대가 ‘레이지 이코노미’의 주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필수적인 직장 업무나 취미 생활 등을 제외하고는 편리함과 시간 절약을 위해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다.

전문가는 MZ세대의 편의주의 추구와 온라인 활성화 등이 ‘레이지 이코노미’ 현상을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MZ세대들은 내가 하기 힘든 부분을 대신 해줄 사람을 인터넷으로 손쉽게 찾는다. 1인 가구가 늘어난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라며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동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유용하다. 기술의 발달로 수요와 공급의 매칭이 쉬워지면서 앞으로 레이지 이코노미 현상은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MZ세대들은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면서 “플랫폼을 활용한 무형의 서비스가 주목을 받으면서 MZ세대들의 이러한 소비 트렌드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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