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원 장난감? 없어서 못구해요” [나는 ‘어른이’다]

“수백만원 장난감? 없어서 못구해요” [나는 ‘어른이’다]

줄어드는 아이들, 2019년 장난감업체 10곳 중 7곳 사라져
한국콘텐츠진흥원, 키덜트 시장 매년 성장세…최대 11조
블리츠웨이·JND스튜디오 등 국내 피규어 제조사 해외 인기 
전문가들 “키덜트 문화의 성장에는 복합적 요인 존재”
온라인 판매처 및 리셀 시장의 성장도 큰 영향 

기사승인 2022-09-01 07:46:41

자녀나 조카 장난감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소비자들은 본인의 만족을 위해 수십, 수백만원의 레고나 피규어를 과감히 구매한다. 장난감 시장도 양분화 되고 있다. 해마다 줄어드는 출산율에 아이들을 위한 전통 장난감업계는 곤혹을 치르고 있는 반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키덜트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인이 키덜트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봤다. 어릴 적 영화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된 이후 구매여력을 갖추게 되면서, 과거의 추억과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써 수집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구매와 판매 창구도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해외에서만 구매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구매는 물론 리셀 창구도 다양해진 만큼 재테크로써도 기능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2021년 출생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6만60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만1800명(4.3%) 감소한 규모로 역대 최저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도 0.81명으로 매년 감소세다. 이에 전통 장난감 업체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국내 인형·장난감 관련 제조업체의 생산액은 2003년 3705억원에서 2019년 2806억원으로 감소했다. 사업체 수도 219개에서 69개로 줄었다. 10곳 중 7곳이 사라진 셈이다.

반면 어른들을 위한 키덜트 시장은 매년 증가세다. 키덜트란 아이들을 뜻하는 ‘키즈’와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의 합성어다. 어린 시절 추억을 바탕으로 레고나 피규어 등 장난감을 소비하는 어른을 뜻한다. 좋아하는 영화나 만화, 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를 축소해 완벽한 형태로 재현한 피규어 수집은 성인들의 취미로 불리며 매년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산업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키덜트 관련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원대, 2015년 7000억원대 등 매년 20%씩 성장했다. 2020년 1조6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며 앞으로 최대 11조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JND스튜디오 홈페이지 캡쳐

사진=피규어 판매업체 피규어스토리 홈페이지 캡쳐

실제 최근 몇 년간 국내 굵직한 글로벌 피규어 제조회사도 여럿 생겼다. 영화 캐릭터 피규어로 유명한 ‘블리츠웨이’는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53% 증가한 136억원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일본 도쿄 지사 설립을 위한 현지 행정 절차를 완료하기도 했다. 

JND스튜디오는 2019년 설립된 명품 피규어 제조사다. 지금까지 8개 작품밖에 내놓지 않은 신생 회사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발매했던 ‘할리퀸’은 259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오픈과 함께 수분 만에 완판됐다. 발매 당일 국내에서만 홈페이지에 8000명의 접속자가 몰리며 서버가 다운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원더우먼’ 피규어는 정가(239만원)보다 훨씬 높은 400만원의 가격에 리셀가가 붙기도 했다. 실제 중고나라나 리셀 플랫폼에 가보면 작게는 몇 십 만원부터 크게는 몇 백 만원까지 고가의 피규어를 거래하는 소비자들이 여럿이다. 

관련 유튜브들도 많아졌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 등장하는 인기 캐릭터를 실물로 제작하거나, 피규어와 프라모델을 소개하고 리뷰하는 영상들이 키덜트족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개그맨 이상훈씨는 키덜트 업계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지난해 기준 약 3억원을 피규어 구매에 사용한 이상훈씨는 레고와 피규어 등을 리뷰하는 ‘이상훈TV’를 통해 약 43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 양주시 두리랜드 옆에 ‘후니버셜 스튜디오’라는 피규어 박물관까지 열었다.

어른들이 장난감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수집가들은 저마다의 추억에 대한 향수와 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수집이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레고스토어에서 만난 직장인 A씨(45)는 “20년째 레고를 수집하고 있다. 어렸을 때 최고 장난감은 블록 장난감이었다. 최근 레고사에서 과거 초창기 모델들을 리뉴얼해서 새로 내주고 있는데, 이를 보면 과거의 향수가 느껴져 묘한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개그맨 이상훈씨(41)는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좋아했다. 수험생이 되면서 부모님께서 장난감을 버리셨는데 예기치 않던 이별에서 오는 공허함이 컸다”며 “성인된 후 우연히 온라인 속 레고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고, 어른들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게 피규어는 추억을 공유하는 일종의 매개체다”라고 덧붙였다.

개그맨 이상훈씨가 운영하는 경기 양주시 두리랜드 옆에 위치한 피규어 뮤지엄 '후니버셜 스튜디오'. 사진=안세진 기자

개그맨 이상훈씨가 운영하는 경기 양주시 두리랜드 옆에 위치한 피규어 뮤지엄 '후니버셜 스튜디오'. 사진=안세진 기자

전문가들은 키덜트 시장이 성장 이유로 △콘텐츠 향유 세대의 증가 △1인가구의 증가로 개인의 정체성 및 취향 반영 욕구 △온라인 판매처 및 리셀 시장의 성장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박기수 교수(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는 “키덜트 문화의 주축이 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관련 콘텐츠들을 직접적으로 향유했던 사람들”이라며 “성인이 된 이후 단순히 피규어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구매여력을 바탕으로 직접 수집을 하고 그 수집 과정의 즐거움까지 누리게 되면서 시장이 커졌다. 피규어는 현재와 과거를 잇는 가장 좋은 매개체”라고 말했다.

장난감을 구하고 팔 수 있는 판매창구의 증가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일본 등을 해외를 나가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매가 가능해졌다”며 “여기에 최근에는 리셀 시장도 등장했다. 단순히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판매, 재구매가 가능해진 만큼 하나의 재테크로써도 기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1인가구의 증가도 키덜트 시장이 커질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박 교수는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자기 정체성 혹은 취향을 공간 안에 직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피규어가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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