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 해소를 위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주요 식품에 제품명과 유통기한 등 점자가 없어 시각장애인의 불편이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칠성음료, 오뚜기 등이 선제적으로 점자 표시를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1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가 자주 섭취하는 음료, 컵라면, 우유 제품에 대해 점자 표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점자 표시율이 37.7%로 저조하고, 표시한 제품도 가독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원은 지난 2월 11일부터 약 두 달간 식품 점자 표시 여부를 조사하고, 오프라인에서 음료·컵라면·우유 중 1개 이상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시각장애인 192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13일부터 11일간 식품 점자 표시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소비자원은 국내 14개 식품 생산업체의 총 321개 제품 중 121개(37.7%) 제품만 점자 표시가 되어있었다고 밝혔다. 식품의 점자 표시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음료 조사대상 7개 업체 중에서는 롯데칠성음료가 생산하는 제품의 점자 표시율이 64.5%로 가장 높았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2021년 상반기부터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아이시스 8.0’, ‘칠성사이다’에 브랜드명 점자 표기를 시작했다.
컵라면 조사대상 4개 업체 중에서는 오뚜기가 63.2%로 가장 높았다. 오뚜기는 지난해 9월 '컵누들 얼큰 쌀국수'를 시작으로 진라면, 진짬뽕, 참깨라면 등 전체 컵라면(용기면)의 50%이상을 점자로 표기했다.
음료는 191개 제품 중 49.2%(94개)에 점자 표시가 있었는데 캔은 89개 중 89.9%(80개), 페트병은 102개 중 13.7%(14개)에 점자를 표시하여 용기 재질에 따라 차이가 컸다. 식품의 유통기한은 조사대상 전 제품에서 표시하고 있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구매 후 보관 과정에서 변질된 식품을 섭취할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았다.
점자 표시가 확인된 78개(음료류 51개, 컵라면 26개, 우유 1개) 제품의 가독성을 조사한 결과, 92.3%(72개)가 가독성 평가에서 ‘중’ 미만(2점 미만, 3점 척도 기준)의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소비자원이 시각장애인연합회의 협조를 통해 40~70대 시각장애인 소비자 20명을 대상으로 점자 표시 가독성 평가를 3점 척도 기준으로 진행한 결과다.
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식품 점자 표시와 관련한 불편 경험 유무에 대해 캔·페트병 음료류는 83.3%, 컵라면은 74.0%, 우유류는 67.7%가 불편을 경험한 것으로 응답했다. 불편 이유에 대해서는 ‘점자 표시가 없었다’라는 응답이 음료류 71.9%, 컵라면 67.6%, 우유류 75.4%로 모든 품목에서 가장 높았다.
시각장애인 80% 이상이 제품명·유통기한 등 식품 정보에 대한 점자 표시를 희망했다. 식품에 표시되길 희망하는 점자 내용으로는 음료류, 컵라면의 경우 제품명이 각각 80.7%(155명), 84.9%(163명)로 가장 많았고, 우유류의 경우 유통기한이라는 응답이 88.0%(169명)로 가장 많았다.
소비자원은 시각장애인의 소비생활 편의성 제고를 위해 조사대상 사업자에게 식품 점자 표시 활성화 및 가독성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도 개선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점자표시를 넣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시행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로 점자 표시 도입 및 가독성 개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