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블랙핑크가 K팝 걸그룹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정규 2집 ‘본 핑크’(Born Pink)로 팝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의 음반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두 차트에서 동시에 정상을 밟은 K팝 걸그룹은 블랙핑크가 처음이다. 아시아 여성 아티스트 전체를 통틀어도 최초다.
K팝 최초 美·英 음반 차트 1위
눈여겨 볼 기록이 한 두 개가 아니다. 25일(현지시간) 빌보드에 따르면 블랙핑크가 지난 16일 내놓은 정규 2집은 일주일 동안 미국에서 10만2000여장 팔렸다.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 1위로 직행한 K팝 걸그룹 최초 기록이다. 실물 음반 판매량은 7만5500장, 다운로드 횟수(TEA)와 스트리밍 횟수(SEA)를 음반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가 각각 1500장과 2만5000장으로 집계됐다. 이틀 먼저 공개된 영국 오피셜 음반 차트에서도 블랙핑크는 정상에 올랐다. 이 또한 K팝 걸그룹 최초다. 그동안 이 차트 정상에 오른 한국 가수는 그룹 방탄소년단이 유일했다.
블랙핑크는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팬들이 만들어준 영광스러운 순간”이라며 “많은 스태프들이 우리와 머리를 맞대며 노력해 만든 음반이다. 이런 음반이 많은 분들에게 제대로 닿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음반은 한국에서만 일주일 만에 약 154만장(한터차트 기준) 팔렸다. 수출 물량을 포함한 써클차트(옛 가온차트) 집계에서는 213만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해외 시장 정조준…블랙핑크는 어떻게 달랐나
블랙핑크는 달랐다. 가요계는 블랙핑크를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K팝 걸그룹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롤모델”(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원)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2016년 데뷔한 블랙핑크는 2018년 낸 ‘뚜두뚜두’를 시작으로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You), ‘러브식 걸스’(Lovesick Girls) 등을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렸다.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유력 시상식인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블랙핑크는 팬덤 중심 소비가 두드러지는 K팝 그룹과 달리, 일찍부터 해외 활동에 힘을 쏟아 현지 팬들에게 이미 글로벌 그룹으로 각인돼 있다”고 짚었다. 블랙핑크와 다른 K팝 그룹의 차이는 음반 판매량 대비 스트리밍 비율에서 도드라진다.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트와이스 등 앞서 빌보드 200 상위권에 랭크된 K팝 가수들의 경우, 전체 음반 판매량에서 스트리밍 비중이 10% 미만으로 낮다. 반면 블랙핑크는 스트리밍 횟수를 음반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가 전체 음반 판매량의 25%가량을 차지한다. 김 평론가는 “이는 블랙핑크의 미국 내 대중적 인지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짚었다.
블랙핑크도 미국 시장을 의식한 듯 최신 팝 흐름에 맞춰 2집 음반을 꾸렸다. 선공개곡 ‘핑크 베놈’(Pink Venom)과 타이틀곡 ‘셧 다운’(Shut Down)을 비롯해 음반에 실린 노래 대부분 영어 가사 비중이 높다. 수록곡 ‘타이파 걸’(Typa Girl), ‘하드 투 러브’(Hard to Love), ‘탤리’(Tally) 등 가사에 욕설이 들어가 미성년자 청취 불가 판정을 받은 곡이 많다는 점, 복잡한 세계관 대신 인기 그룹의 스웨그(Swag·과시)를 뽐내는 점 등도 해외 팝 경향과 들어맞는다.
김 평론가는 “영어 가사 비중과 내용, 비주얼과 퍼포먼스 등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에 맞춰 음반을 구성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잘 나가는 여성상을 내세운 점 역시 팝 트렌드와 궤를 같이 한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동안 인기 걸그룹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블랙핑크가 그 자리를 채우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