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공급 부족으로 일부 약은 1인당 판매를 제한하고 있어요. 올 겨울에도 ‘감기약 품귀 현상’이 올 것 같아 걱정입니다.”
14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약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약사 윤모씨는 이같이 털어놨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은 진정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독감(인플루엔자), 메타뉴모(hMPV) 바이러스 등 다양한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며 약국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는 “일부 감기약은 판매 속도에 비해 공급이 늦다”며 “특히 소아약, 아세트아미노펜제제는 코로나19 이후 계속해서 수급이 안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기약 부족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한 사재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독감으로 인한 감기약 소비 증가, 원료 부족으로 인한 공급 불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것 같다”며 “품절약이 풀리면 다시 품절 될까하는 공포에 평소보다 재고를 많이 사입하는 약국도 있어서 품절이 심해지기도 한다. 전문약의 경우 올 겨울 품귀가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선 약국에서도 감기약 부족 현상이 감지되는 상황이다. 올해 초 감기약 품절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올해 초, 신규 확진자가 급증해 감기약 품절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이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감기약 대란에 대응하기 위해 3월부터 ‘감기약 신속대응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수급 현황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그러나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식약처는 ‘감기약 신속대응시스템’을 통해 감기약 공급 불균형을 감지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6일까지의 의약품 공급안내 시스템 상황을 살펴보면, 타이레놀의 원료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106건의 공급 요청은 모두 ‘공급불가품목’이라고 확인된다.
식약처는 지난 8월12일부터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식약처 감기약 수급 관련 보고 자료에 따르면 해당 시스템 운영 결과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 31개 품목 중 21개(67.7%), 이부프로펜 23개 품목 중 21개(91.3%)가 ‘공급곤란’으로 1차 확인됐다고 보고됐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해열진통제 중 특수 조제용 성분, 아세트아미노펜 650mg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오 처장은 ‘약가 연동제’를 완화했음에도 감기약 증산을 유도하지 못했다며 “식약처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약품 사용량 증가 시 가격을 인하하는 제도인 ‘약가 연동제’ 적용을 8월 완화했다. 다만 이는 감산은 막아도 적극적 증산을 유도하진 못하는 정책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오 처장의 설명이다. 오 처장은 약가 인상 등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약가가 오히려 옛날보다 줄어들어 있는 상태”라며 “약가 조정을 복지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식약처는 최근 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감기약 증산 대책을 내놨다. 12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감기약 생산 독려를 위해 업체와 간담회를 갖고 감기약 생산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업계에 협조 요청했다.
식약처는 업계가 감기약 증산을 위해 요청한 사항 네 가지를 수용하기로 했다. △해열진통제 주성분 복수 인정 △조제용 감기약의 소량 포장 공급 의무 해제 △감기약 생산 위해 갱신 대상 품목 생산하지 못할 경우 갱신 불허 대상에서 제외 △감기약 원료 증산 위해 다른 업체 제조원 추가 시 제출 서류 완화 등이다.
장동석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대표는 “감기약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독감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감기약 품귀 현상이 충분히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약사 입장에선 수요량이 늘고 있으니 많은 양을 사입하려 해도 호흡기 감염병 유행이 잦아들었을 때 남은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며 “현장에선 감기약 부족으로 인한 혼란이 있어 식약처가 내놓은 대책 이외에도 다양한 대책을 통한 수급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