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실패한 종이 팩, 가능성부터 증명했죠” [청년 도전과 금융②]

“대기업도 실패한 종이 팩, 가능성부터 증명했죠” [청년 도전과 금융②]

기사승인 2022-11-16 06:00:15
리필리 김재원 대표. 사진=박효상 기자
“우리 곁의 사람들과 지구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가 마지막 세대가 될 순 없잖아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문제에 ‘종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청년이 있다. 우유를 담는 종이 팩에 생필품을 담겠다는 것. 그의 도전은 ‘생필품을 담는 종이 팩’을 만들어 냈다. 리필리 김재원 대표(37)를 만나 그의 도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기업도 실패한 종이 팩을 만들기까지


종이 팩은 플라스틱 용기와 비교했을 때 동일 용량 대비 탄소 배출량이 3분의 1 수준인데다 수거 후 화장지, 벽지 등 고급 펄프로 100% 재활용할 수 있다. 유제품 등 식품만 담던 종이 팩에 다른 물질을 담은 건 국내에서 리필리가 처음이다.

창업을 결심한 김 대표는 사례 연구부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제가 하고 싶던 환경 분야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평소 문제라고 생각했던 플라스틱 소비재 분야를 위주로 찾았죠. 뉴욕에서 종이 팩에 세제를 넣어 판매하는 기업이 있더라고요. 기업의 재무제표와 투자 라운드를 보니 성장세가 빠르고 안정적이었어요. 미국 현지에 있는 친구들한테도 물어보니 다들 알고 있는 브랜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왜 종이 팩에 우유만 담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어본 김 대표는 몇몇 대기업이 종이 팩에 생활용품을 담는 것을 시도했지만 팩에 담는 순간 팩이 터졌다는 답변을 들었다.

종이 팩에 화학물질을 담는 건 간단하지 않다. 종이 팩은 작은 온도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고, 어떤 성분을 내부에 넣느냐에 따라 내구성이 달라진다. 특정 성분이 종이 팩 표면에 닿으면 코팅 면이 벗겨져 종이 팩 안에 있는 내용물이 새거나 터진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리필리 공장 사진. 리필리 제공

화학물질을 담을 수 있는 종이 팩을 개발하는 것이 사업의 관건이었다. 그는 “종이 팩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계가 국내에는 없어요. 수입해 오는데 한 대당 몇 십 억했죠. 우유는 이미 해외에서도 종이 팩에 담겨 판매되니까 바로 생산하는 데 문제가 없는데, 생활용품은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들여오기가 어려웠죠”라며 당시 막막함을 회상했다.

리필리는 해외 엔지니어 회사에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국내외 엔지니어 회사에 도면이나 만드는 방법을 수소문했다. 대부분 회사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던 중 한 군데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회사와 기기 개발을 시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리필리 김재원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첫 제품 출시 후 쏟아진 러브콜

첫 제품은 지난해 8월 출시됐다. 법인을 설립한 지 9개월 만이다. 김재원 대표는 “성분 안정성 분석에서 통과한 천연 세제 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출시했어요.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에 친환경 성분의 세제까지 담아 판매하니 반응이 좋았어요. 2021년 8월 제품을 출시해서 12월까지 1300개를 팔았죠.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소비자와 영유아 자녀가 있는 여성분들의 구매가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제품이 출시되자 기업들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그는 “별다른 마케팅도 없었는데 여러 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왔어요. 종이 팩에 생활용품을 담을 수 있는 업체는 저희밖에 없거든요. 대기업이나 해외 기업이 우리 기업 제품을 종이 팩으로 유통할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현재 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협업 문의가 많다 보니 리필리의 주력 사업 모델을 B2B(기업 간 거래) 사업으로 전환했다. B2B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리필리는 기존에 있던 플라스틱 제품을 종이 팩으로 미필용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향후 국내외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제품 생산을 할 계획이다.

그는 “종이 팩에는 세제뿐만 아니라 샴푸, 린스, 손소독제, 페인트, 비료, 와인 등을 담을 수 있거든요. 리필제품도 만들지만, 플랫폼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거예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리필리가 제작한 종이팩. 리필리 제공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창업하면서 그를 가장 막막하게 했던 것은 비용이었다. 김 대표는 “IT에 비해 제조업은 기계, 원자재, 부자재 등이 필요해요. 처음에 투입되는 비용이 클 수밖에 없죠. 저도 대출을 받아 기기 개발을 시작했어요.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기계다 보니 소량 생산에 그쳤지만, 기계를 통해 제품 생산에 대한 가능성을 시장에 보여줬죠. 투자자들이 검증된 샘플을 봐야 투자 결정을 하니까요”라고 설명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IR Pitch deck(투자제안서)’을 꼽았다. 사업 내용은 좋은데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대표가 많다는 것. 투자제안서의 방향성을 바꾸니 반응이 확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투자를 거절한 투자자들이나 심사 담당자들을 붙잡고 어떤 부분을 고치면 좋을지, 어떤 점을 어필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어요. 투자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포인트를 알게 됐죠. 조언대로 수정하고 어필하다 보니 잘되더라고요”라고 조언했다.

신한퓨처스랩 사무실. 신한금융 제공

리필리는 올해 신한퓨처스랩 8기에 선정됐다. 비법은 신한금융지주와의 연계점을 찾은 것이다. 신한금융지주는 국내 금융권에서 대표적인 ESG 선도 기업으로 꼽힌다.

김재원 대표는 “ESG를 어필한 것이 핀테크 기업이 대부분인 금융권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뽑힌 비법이죠. 신한퓨처스랩 관계자들이 신한금융과 어떤 협업을 할 수 있는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계속 물어봐 주세요.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활로를 개척하기 수월했어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을 전했다. 김 대표는 “개인적으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된다고 생각해요. 버티기 위해서는 기획이나 계획이 잘 되어야 하죠. 개선해도 안 된다면 아이템을 바꿀 필요는 있죠. 자신의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서 진행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고 했다.

☞신한퓨처스랩이란?
신한 퓨처스랩은 국내 대표적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및 창업 초기 기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올해 8기까지 총 323개사의 혁신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국내·외 육성기업에 640억원을 투자했다. 2016년 베트남(호치민), 2019년 인도네시아(자카르타)에 글로벌 퓨처스랩을 설립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고 있으며, 2020년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진출 지원 국가를 확대했다. 인천 송도의 ‘인천 스타트업파크’, 금융위원회의 ‘마포혁신타운 프론트원’과 협력해, 미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사무 공간을 제공하고 육성 프로그램을 확대 지원하고 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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