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뷰티, 패션, 식음료 등 산업을 가리지 않고 ‘캐릭터 굿즈’가 유통가를 장악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한정판 굿즈를 위해 본품을 구입하고, SNS 인증 열풍이 퍼지며 굿즈는 단순한 덤을 넘어 브랜드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캐릭터 IP 협업을 확대하며 소비자 락인(lock-in)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올리브영이 산리오와 손잡고 선보인 한정 굿즈는 잇따라 품절 사태를 빚었다. 지난 1일부터 한 달간 진행 중인 ‘산리오캐릭터즈 러브 서머(Love Summer)’ 이벤트에서는 7만원 이상 구매 시 증정되는 산리오 비치타올 4종은 이벤트 첫날부터 완판됐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리셀가가 4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굿즈에 이끌려 소비가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이날 서울의 한 올리브영 매장을 방문한 이주연(18)씨는 “산리오 굿즈가 너무 귀여워서 첫날에만 7만원 넘게 쓰고 타올을 받았다”며 “화장품이나 단백질쉐이크 등 산리오 캐릭터와 협업한 제품만으로 10만원어치는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산리오 캐릭터 중 ‘폼폼푸린’을 가장 좋아한다는 직장인 최모(28)씨도 “같은 클렌징폼이라도 산리오 굿즈가 붙으면 꼭 사고 싶어진다”며 “당장 필요한 제품이 아니어도 콜라보는 한두 개씩 쟁여둔다. 리셀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소장용으로 사서 SNS에 인증한다”고 했다.

굿즈가 ‘소장’과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리셀 시장도 함께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홍콩 아티스트 카싱룽이 창작한 ‘라부부(Labubu)’ 캐릭터는 국내외 키덜트 컬렉터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북유럽 괴물 설화를 모티브로 만든 ‘더 몬스터즈’ 시리즈 대표 캐릭터로, 팝마트(Pop Mart) 블라인드 박스를 통해 한정 수량으로만 출시된다. 희소성이 높은 데다, 글로벌 셀럽 리한나와 블랙핑크 리사 등이 인증하면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지난해에는 코카콜라와 협업했고, 유니클로(Uniqlo)도 올 가을 팝마트와 손잡고 라부부가 포함된 ‘더 몬스터즈’ 티셔츠 컬렉션(UT)을 선보일 예정이다.
라부부 피규어를 수집하는 직장인 지모(33)씨는 “라부부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뽑는 재미가 있고, 한정판은 웃돈을 붙여 리셀할 수 있어 덕질이 투자처럼 느껴진다”며 “커뮤니티에서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교환하거나 시세를 공유하는 것도 재미”라고 말했다.
실제 리셀 시장 반응도 뜨겁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한정판 플랫폼 ‘솔드아웃’에서 올해 상반기 가장 높은 프리미엄을 기록한 상품은 팝마트의 ‘라부부 키링’이었다. 지난 6월 한 달간 솔드아웃 내 팝마트 브랜드 상품의 월간 거래액은 전월 대비 510% 급증했다. 솔드아웃 측은 “K-팝 아티스트와 해외 셀럽들의 애장품으로 키링이 주목받으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가 굿즈 마케팅에 집중하는 배경은 명확하다. 굿즈는 단순한 덤이 아니라 소비자 락인 전략으로 작동해 충성 고객을 유지하고 재구매를 유도한다. 굿즈를 소유한 뒤 SNS에 인증하고 커뮤니티에서 자랑하는 문화가 퍼지며 굿즈 자체가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특히 한정판은 ‘놓치면 안 된다’는 결핍 소비 심리(FOMO)를 자극해 단기 매출 상승에 기여한다는 평가다.
굿즈와 캐릭터 IP 협업은 이제 단순한 판촉을 넘어 브랜드 락인 전략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산리오는 화장품 외에도 유통·패션·F&B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굿즈 소비층을 넓히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티 브랜드 오설록은 글로벌 캐릭터 헬로키티와 협업한 ‘헬로키티 컬래버 에디션’을 전날 출시했고, 이디야커피도 한교동, 포챠코 등 산리오 캐릭터를 내세워 여름철 한정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에버랜드는 올봄 튤립축제에 산리오 캐릭터 IP를 활용해 입장객 수가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캐릭터 협업의 ‘빛’만큼, 그 이면에 있는 ‘그늘’도 지적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캐릭터 콜라보는 유통계에서 이미 성공 공식으로 자리잡았다”면서도 “캐릭터 사용에 따른 라이선스 비용과 계약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예상보다 수요가 빠르게 줄거나 물류 비용이 늘면 재고 관리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굿즈는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는 핵심 자산이지만 공급과잉이나 리셀 시장 왜곡 등 부작용도 관리해야 한다”며 “단순 협업을 넘어 브랜드에 맞는 IP 선별력과 굿즈 차별화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