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챈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수퍼비의 랩 학원’에 출연해 결승까지 올라 주목받았다. 당시 영챈스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이후 출연한 고등래퍼4에서는 훌륭한 랩 스킬을 뽐내며 우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가 힙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방황에 있었다. 내성적인 탓에 친한 친구는 한 명뿐이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버거웠고, 타인을 대할 땐 가면을 쓴 것처럼 답답했다. 그러다 솔직한 가사가 특징인 수퍼비의 ‘Pass the rhyme’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고, 힙합에 빠지게 되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꾸며내는 데에 질려 있던 영챈스에게 힙합은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됐다.
“그때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Eyes on me도 제 첫사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노래거든요. 실제로 들려줬어요. 고백은 실패했지만, 후회는 없어요(웃음). 이번 앨범 MAIN COURSE도 전부 제 이야기예요”
총 일곱 곡이 수록된 앨범 MAIN COURSE는 R&B와 랩의 경계를 넘나드는 멜로디를 사용해 트렌드와 음악성을 동시에 잡았다. 수퍼비, 트레이드 엘(TRADE L), 재하 (JAEHA), 박현진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천재 프로듀서라 불리는 웨이체드(Way Ched)가 프로듀싱을 맡으며 앨범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EP 앨범은 10대 영챈스가 느꼈던 감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장이기도 하다. 한 사람을 8년 동안 사랑했던 순수함,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 이후 느꼈던 공허함, 앨범 작업 진척이 나지 않았을 때의 조급함, 나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를 봤을 때 느낀 열등감, 그럼에도 힙합을 계속하는 열정을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1번 트랙 ‘강서빈’(intro)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노래다. 지금껏 음악을 해 온 본인의 모습을 압축했다. 잔잔한 비트 위에 얹은 진정성 있는 가사와 중독성 강한 훅(Hook)이 특징이다. 그는 이 노래가 자기소개라며, 음악으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낼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전했다. “취미로 하던 힙합을 업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음악을 그만두고 싶어지기까지 했어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에 만든 노래예요”
타이틀곡 ‘그런 날’은 인간관계를 어려워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만들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게 무섭고, 사람들 사이에 숨고만 싶었던 때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타이틀곡답게 풍성한 사운드를 사용했고, 서정적인 멜로디 속 가사가 어우러져 밸런스를 갖췄다.
7번 트랙 ‘재미로’(2021)(feat. 수퍼비)는 영챈스에게 의미 깊은 곡이다. 본인의 우상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다. “정말 재미로 만든 노래인데 생각보다 곡이 잘 뽑혔어요. 너무 힘주지 않아도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앨범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완벽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공백이 길어졌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앨범 준비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위해 40킬로를 감량했는데, 프로필 사진 촬영 당일 목욕탕에서 기절해서 크게 다칠 뻔했어요. 슬럼프에 빠져 곡도 잘 안 나오던 와중에 쓰러지기까지 하니 내가 무엇이 즐거워서 음악을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다쳤던 것보다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더 힘들었어요”
그런 그를 일으켜준 건 선배 음악인들과 친구다. “프로듀서 형에게 너무 잘하려고 안간힘을 쓰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조언을 들었어요. 네가 음악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잊지 말라는 말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힘을 빼고 작업하려 노력했고,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영챈스는 본인을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나이에 비해 많은 음악 커리어를 쌓아 왔지만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다. “지금도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음악색과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랑 협업도 할 예정이고요. 단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내년 안으로 단독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앞으로도 힙합이라는 한 가지 장르에만 머무르고 싶진 않아요. k-pop 프로듀싱도 잘하는 올라운더가 되어서 20년 후쯤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고 싶습니다. 저는 80살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되어도 음악계에서 일하고 있을 거예요”
심하연 쿠키청년기자 simhaye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