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이어진 보험사의 단기차입금 한도 확대 기조가 새해에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보험사의 퇴직연금발 ‘머니무브’가 현실화됨에 따라 보험업법 특별계정을 통해 단기차입금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그럼에도 생보사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푸본현대생명의 보험영업수지 적자는 1조6883억원으로 불어났다. 미래에셋생명은 일반계정 해약환급금은 6066억원에 그친 반면, 특별계정 해약환급금이 1조7090억원으로 퇴직연금과 변액보험 해약이 크게 늘어났다. 생보사의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사방에서 제기된 이유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퇴직연금의 대규모 ‘머니무브’ 배경을 두고, 크게 두 가지 이슈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흥국생명 사태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보험사의 채권 매수·매도 환경이 악화된 것이 첫 번째. 이런 상황에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시중은행, 증권사의 퇴직연금으로 갈아타는 것이 두 번 째 이유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보험회사가 퇴직연금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보험업법 제 53조 제2항(차입한도)을 한시적으로 위반해도 조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보험사는 오는 3월 31일까지 퇴직연금 특별계정에 의해 자산의 100분의 10의 범위를 초과해 차입하더라도 보험업법상 제재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RP 발행 한도를 퇴직계정의 10%에서 무제한으로 완화하는 조치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당국의 발표 이후 여러 보험사들은 단기차입금 한도를 증액했다. 롯데손해보험은 기존의 단기 차입금 한도 1500억원에서 3조3000억원으로 늘렸고, 삼성생명은 단기차입금 한도를 기존 2000억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증액했다. 신한라이프는 130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늘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예상되어 다수의 보험사가 RP(환매조건부채권) 차입 한도를 늘리며 선제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사의 퇴직연금은 보통 12월에 주기적으로 머니무브 현상이 일어나지만,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보사의 퇴직연금발 머니무브 우려보다 흥국사태, 레고랜드사태로 인해 불안정해진 채권시장이 더 큰 우려”라고 토로했다. 퇴직연금발 머니무브는 연말에 한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면, 장기적으로 채권시장의 안정화가 두드러진 문제라는 것이다. 생보사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금융당국의 한시적인 단기차입금 한도 규제 완화로 해결할 수 없다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사는 통상 퇴직연금 계약을 해지하는 가입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때 주로 채권을 매도해 현금을 확보하는데,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 레고랜드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장기간 채권 매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시중은행과 증권사에서 평균 5%가 넘는 고금리 퇴직연금 상품을 선보이면서 생보사의 어려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상품의 이자율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금융당국의 권고로 키움증권, 다올투자증권은 8%가 넘는 고금리 상품 판매를 중단했지만,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고금리 상품 유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