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 의료계 반대 넘을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 의료계 반대 넘을까

당정,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입법 드라이브
무상의료본부 “민간보험 중심 미국식 의료 민영화로 향하는 길”
의료계 일각 입장 변화도… 한의협 “보험업법 개정에 찬성”

기사승인 2023-02-01 17:29:37
무상의료운동본부가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반대 의견을 밝혔다.   사진=김은빈 기자

정부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종이 서류를 직접 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전산화해 소액 보험료도 청구가 쉬워지도록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민의 의료정보가 민간보험사에 넘어가면 보험료 인상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화를 추진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새해 업무보고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해 보험업법을 개정해 보험가입자가 보험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당도 입법화 의지를 드러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실손보험은 국민 대다수인 4000만명이 가입해 있지만 청구가 불편해 1차 병원 진료비 등 소액 보험금은 청구를 포기하는 것이 실상”이라며 “의료계가 이를 거부한다면 입법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정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실손보험을 청구하는 절차가 번거로워 보험 가입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14년째 나오고 있어서다.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선 진료비·약제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 산정내역서, 병명 확인서 등을 종이 서류로 받아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해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하는 가입자들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녹색소비자연대가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7.2%가 실손보험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입자의 편의성을 향상하기 위한 취지지만, 해결해야 할 난제가 쌓여있다. 개인 진료기록은 매우 민감한 의료정보인데, 이를 함부로 민간 보험사에 넘겨선 안 된다는 우려가 높다. 또한 보험사들이 이를 활용해 상품을 개발하면 민간보험사만 배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환자의 건강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다. 이것이 민간에 개방되는 순간 매매할 가치가 높은 자산이 되기 때문에 개인정보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환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 등에 활용할 수 있어, 결국 보험료 지급률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민영화의 첫발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상의료운동본부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 보험사들이 개인의료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축적하는 것은 삼성 등이 매번 요구했던 것이며,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라고 밝혀왔다”며 “국민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민간보험 중심 미국식 의료 민영화로 향하는 길”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의료계 일각에선 입장 변화도 감지된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7일 성명서를 내고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는 국민의 편의성을 높이고 소비자들의 보험 청구 권리를 확보하는 제도가 될 것”이라며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한의협과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함께 반대 의견을 내오던 의협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김 이사는 “당초 태스크포스(TF)를 한의협 등과 함께 구성해 목소리를 내왔는데, 상의 없이 입장을 선회했다”면서 “한의협 공식 입장인지 확인하고 있다. 단체 내에서 충분히 공유가 된 건지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계 반대를 넘기 위해 금융당국에서는 중계기관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1일 쿠키뉴스에 “중계기관에 대해선 심평원을 제외하는 것 등을 비롯해 여러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며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밝혔다. 중계기관이 심평원이든 다른 기관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우려를 불식시키기도 했다. 가령 심평원이 중계기관을 맡는다고 해도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 측정 권한이 넘어갈 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의협은 심평원을 중계기관 후보에서 제외하더라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심평원이 중계기관을 맡게 되면 비급여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도 정부가 관리해 삭감할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납득되지 않는다”며 “중계기관을 다른 기관으로 고려한다고 해도 심사기능만 문제가 아니라 개인정보 안정성 문제도 우려하고 있어 유심히 보고 있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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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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