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비즈니스 '텐션'에 당혹, 팽팽한 긴장감에 놓인 '귀농인'

MZ세대의 비즈니스 '텐션'에 당혹, 팽팽한 긴장감에 놓인 '귀농인'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22)
주차 정산 헤매는 나에게 도움 주러 온 MZ여성...

기사승인 2023-03-02 14:16:32
지난주에 서울 양재동에 있는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센터에서 중소기업의 TV 홈쇼핑 진출을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2박 3일 교육 일정이었는데 하루 참석해 보니 TV 홈쇼핑이 우리 회사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교육받던 것을 중단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할 일이 많은데 거기 앉아서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교육을 받고 있을 일은 아니다 싶었다.

교육을 마치고 주차요금 사전 정산을 위해 1층에 설치되어 있는 정산 기계로 갔다. 차량번호를 누르고 교육 주최 측에서 제공한 주차 할인권을 넣었더니 방향을 잘 못 넣었는지 정산이 안 되고 모니터에 뭐라고 떴다.

모니터에 뜬 메시지를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젊은 여성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마 나를 도와주러 오는 것 같았다. 내가 얼른 주차할인권 방향을 바꿔서 넣었더니 정산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그 여성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런 풍경의 지리산 산자락에 살다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TV홈쇼핑' 교육에 참여했다. MZ세대의 비지니스 마인드가 주는 긴장감은 내 환경과 사뭇 달랐다. 사진=임송

돌아오는 길에 그 젊은 여성에게 내가 어떻게 비쳤기에 나를 도와주려 했을까 생각하니 약간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그 젊은 여성은 아마도 나를 기계 조작에 서툰 중늙은이쯤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농촌에 살다 보니 그런 기계에 서툴고 내가 중늙은이인 것도 사실이니 그 여성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정도 기계를 다루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남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울 뿐이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면 이런 기분이려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이런 전조가 아침부터 있었다. 아침 10시에 교육 시작이라 새벽 5시에 지리산에서 출발했다. 서울 양재동 aT 센터에 도착하니 아침 8시 반.

시간 여유가 있어 커피를 마시러 지하 카페로 내려갔다. 카페에는 설명회(1층 전시장에서는 ‘GS25 MD 전략설명회’ 개최)에 참가한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30대 전후 젊은이들로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자판을 두드리거나 옆 사람과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커피 나오기를 기다리느라 잠깐 거기에 서 있었는데 왠지 내 모습이 주변 사람들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의 기운에 약간 주눅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도대체 내가 왜 주눅이 들었을까?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입고 있는 옷이 누추해서? 오랜만에 방문한 도시 환경이 낯설어서? 그들이 하는 일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이 난이도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보지만 딱 떨어지는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조용히 생각해보니 카페 내의 ‘텐션(긴장감)’이 높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든다. 그날 카페 내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진지하다고 느꼈다. 마치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 같았다.

당일 1층 전시장에서 벌어질 일들이 사람들 비즈니스에 중요한 일이었기에 카페에 있었던 사람들의 긴장감이 높았고 내가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40세를 전후하여 공정위에서 인권위로 직장을 옮겼다. 두 기관은 조직문화가 매우 다르다. 공정위는 주로 기업체를 상대로 조사를 하는 데라 평소에도 조직 내 긴장감 수위가 매우 높다. 예를 들면, 농담 하나를 하더라도 논리상에 허점이 있으면 누군가 바로 치고 들어올 정도로 논리를 중시한다.

반면 인권위는 조직 구성원 간의 관계가 매우 수평적이다. 당연히 조직 내에서 나이, 성별, 직급 등에 따른 차별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 당시 건물 옥상의 흡연실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이좋게 둘러앉아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인권위로 옮긴 후 공정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나 표정, 사무실 분위기가 “내가 이런 곳에서 수년간 어떻게 생활했을까?” 싶은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공정위에 근무할 때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다른 조직에서 살아보니 그 차이점을 선명하게 느꼈던 것.

내가 카페에서 느꼈던 주눅은 어쩌면 내가 공정위에 다시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한 긴장된 분위기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돈과 권력이 배분되는 소위 진검승부의 장 분위기는 어디나 비슷한 법이니까. 오랜만에 경험하는 그런 긴장된 분위기에 압도되어 주눅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힘도 빠지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 아니겠나. 몸에 힘을 빼고 자신과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굽어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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