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백제의 술 ‘무령화원’으로 비상 꿈꾼다

1700년 백제의 술 ‘무령화원’으로 비상 꿈꾼다

공주 산성시장 한켠서 술 빚는 남자 정담양조장 최예만 대표

기사승인 2023-03-28 13:10:40
백제의 술 무령화원의 최예만 대표. 사진=홍석원 기자

아버지의 땀으로 키운 벼 한 섬,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든 누룩 한 줌. 하늘이 내린 정수 한 말로 다섯 번 정성껏 빚어 만든 ‘백제 술 무령화원’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공주시 산성시장 골목 한 모퉁이로 걸음을 옮기다보면 ‘우리 술 정담 양조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매장 입구에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가 적혀져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백제의 아름다움을 한 줄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때 사업 실패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다 술 빚는 남자로 돌아온 ‘우리 술 양조장 정담’(情談) 최예만 대표(59)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패망한 백제를 술로 부활시키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자신의 혼(魂)을 술에 담고 있다. 

평소 술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던 그가 술을 빚기로 결심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사업 실패 자포자기 심정으로 유럽 여행 도중 '번쩍'

무령화원 최예만 대표가 발효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북유럽을 여행하던 중 집집마다 자신들만의 술(와인)을 만들고 있는 모습에 눈이 번쩍 띄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도 한때 가양주라고 해서 세 집 걸러 한 집 꼴로 술을 빚어 마셨다. 백하주, 이화주 등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술만 해도 300여가지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 가양주가 일제 식민통치 시절 군비 조달을 위해 ‘조선주세령’을 내려 자가 술 제조를 법으로 금지시키고, 해방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면서 우리의 전통술은 거의 명맥이 끊겼다. 

그러다가 1995년부터 술을 개인이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되어 90년간 가양주 문화 단절을 극복하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래서 최 대표는 제2의 인생을 고교시절을 보냈던 공주에서 내 술을 빚기로 결심했다. 

그는 "술은 만들고 싶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술을 만든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는 이유는 시간을 두고 묵묵히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동안의 고뇌와 고심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최 대표는 마침내 2021년 술 제조 면허를 받고 백제 무령왕이 꿈꾼 유토피아를 술을 통해 이뤄보겠다는 의미를 담아 백제의 술 ‘무령화원’을 내놓았다. 

백제의 술 기록찾아 삼만리... 중국·일본 역사서 탐닉 

무령화원.

사실 백제 술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서에는 남아있지 않다.

최 대표는 '백제 술은 곡물과 누룩으로 발효 숙성시켜 빚는데 알코올 도수가 낮아 술 밑을 걸러서 다시 술을 빚었다'라고 적시된 중국 농업기술서 제민요술(濟民要術) 기록을 근거로 현대인의 기호와 입맛에 맞게 백제의 술을 재현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언급된 백제의 술은 ‘4번 빚어 달고 향기롭다’고 묘사되어 있다. 

또 일본 정사인 ‘고사기’에 백제사람 인번(仁番)이 양조 기술을 전수해준 기록을 남아있고 ‘사케’란 말도 우리말의 ‘삭히다’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당시 일본 천왕이 너무 좋아해 1500년전부터 교토 사가 신사에 위패를 모시고 ’술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고도 한다. 

’무령화원‘은 다섯 번의 양조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오양주‘라고 부른다. 

오양주 탄생과정은 길고 힘들었다. 백제의 술 재료로 언급된 수수, 피, 조와 누룩으로 빚은 첫 술은 신맛이 강하고 떫은맛의 타닌성분이 높아 입안을 수축시켰다.

고대의 방식을 고수해 출시하다가는 달콤하고 부드러움에 길들여진 입맛에 외면당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최 대표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양조 방식은 옛 문헌대로 고수하고, 다만 재료는 쌀로 바꾸었다. 

맵쌀과 찹쌀로 다섯번 발효해 부드러운 술 맛 재현 

먼저 맵쌀로 고두밥을 지은 뒤 누룩과 섞어 밑술을 4번 만든 후 마지막 5번째 찹쌀로 마지막 덧술을 완성한다. 찹쌀을 쓰는 이유는 향기와 맛을 더하기 위해서다. 그후 90일~100일 동안 발효 과정을 거친 뒤 짜내 냉장시설에서 30일의 숙성 등 총 120일이 지나면 술이 나온다. 

무령화원이 비싸더라도 병을 쓰는 이유는 이미 완벽하게 발효가 이루어져 어떤 용기에 담아도 터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담에서는 2년전부터 알코올 15%인 약주와 탁주 두 가지를 시판하고 있다. 

인공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찹쌀과 누룩과 물을 사용해 목 넘김이 부드럽다. 

그는 “공주 탄천면의 한 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수확한 쌀만 사용하고 있다”면서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대표는 “제게 술을 빚는다는 것은 치유와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공주에 사는 다문화인들과 술을 빚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고 오래 기억되는 술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최예만 대표가 술 빚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농업회사 법인 전환 전국으로 판매망 확대 모색 

최 대표는 “전국에 전통주를 만드는 곳이 3000여곳에 달한다”면서 “앞으로 농업회사 법인으로 전환해 펀딩도 해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으로 판매망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그 첫 발로 공주시에 소상공인 성장지원사업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또 마침 이날 공주에서는 창의적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점가 지원을 위해 20여명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성공사례를 공유하고, 헌장을 둘러보는 등 조직 역량을 키우고 있었다.

공주=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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