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흐릿하게 선(국경선)을 표시해 독도가 일본 영토로 가르치는 지도가 많이 늘었습니다”
박한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펼친 2023년 채택 일본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 속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분명하게 구분돼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3~6학년이 쓰는 사회과부도(지도장) 교과서에는 독도에 ‘일본 고유의 영토인데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당해 일본은 항의하고 있다’라고 적혔다. ‘불법으로’는 2019년 교과서에선 없던 내용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번엔 다르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보면, 가해 역사는 더 흐릿하게 기술했고 독도 등과 관련한 과거사 문제에는 노골적으로 억지 주장을 펼쳤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처음 역사를 배우는 교과서 문제는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일 미래 협력을 위해 양국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9일 서울 미근동 재단 본부에서 ‘일본 초등학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를 열고 2019년과 2023년 교과서를 비교 분석했다.
박 위원에 따르면 올해 교과서에선 독도에 대해 ‘일본의 고유영토’ ‘한국이 불법 점검하고 있다’ ‘일본이 계속 한국에 항의’라고 서술한 내용이 계속 이어졌다. 시각자료로 사용되는 지도에는 독도와 울릉도에 경계선을 그어 독도를 일본 영토인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일본 전도에 작은 점을 찍는 방식으로 독도 표기를 명확하게 했다.
조윤수 재단 교과서연구센터장은 “다른 섬과 달리 독도는 점을 찍어서라도 (지도에) 넣었다”라며 “예를 들면 지금 문제가 되는 사도섬은 큰 섬인데도 지도에 안 나온다. 독도만 점을 찍었다는 건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국사에 대한 기술에서 억지 주장은 더 공고해졌다. 위가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에 따르면 일본문교출판은 올해 발생 100년이 되는 간토대지진 당시 재일 조선인 학살과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피해를 입은 내용을 삭제했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도래인’ 표현을 ‘대륙’으로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위 위원은 “문화 전파에서 한반도의 영향력을 약화하려 한 서술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일전쟁·러일전쟁 등을 서술한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도쿄서적·일본문교출판·교육출판 등 3종 교과서 모두 러일전쟁에 대해 당시 일본의 승리가 구미 지배를 받던 아시아 국가에 희망을 줬다고 서술했다. 위 위원은 “전쟁 결과를 미화했다”며 “일본 승리라는 성과를 강조해 초등학생에게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주고 싶어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강제 징용·군인 동원과 관련해서는 강제성이 있었다는 논조를 ‘지원했다’는 식으로 바꿔 책임을 희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서적의 새 교과서는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해 “강제적으로 끌려와서(2019년)”라는 표현을 “강제적으로 동원돼(2023년)”로 수정했다. 일본 정부가 2021년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강제연행·연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해당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도쿄서적은 ‘강제’ ‘동원’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다른 교과서는 그마저도 없었다. 교육출판은 “전쟁이 장기화해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노역시켰다”고 했다. 일본문교출판은 기존 교과서의 “일본군 병사로 징병하여 전쟁터에 보냈다”는 문장에서 ‘징병하여’란 표현을 삭제했다. 조건 재단 연구위원은 “(일본) 아이들이 보면 ‘군 동원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정당했다’ ‘조선인들이 원했구나’라는 오해를 심어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변경도 있었다. 일본문교출판의 6학년 교과서 검정본은 국권침탈과 관련해 “러일전쟁 후 한국에서는 일본의 지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격렬하게 저항운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또 일본문교출판은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두고 한일 우호 강화로 이해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 출판사는 조선통신사 접대를 맡았던 아메노모리호슈 역할을 두고 “조선과의 우호에 힘썼다”는 내용도 넣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교과서를 면밀히 진단하고 한일 간 논의를 통해 반복되는 역사 왜곡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 위원은 “지난해 고교 교과서에서는 ‘각의 결정으로 인한 수정’을 드러내는 듯한 소심한 저항도 보였다”며 “일본 교과서 집필진와 한국 집필진이 양국에 가르칠 수 있는, 일종의 상생하는 역사를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상구 재단 연구정책실장도 “일본 교과서 관련 세미나가 매년 연례행사로 되풀이되면 안 된다”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과거 역사공동위원회가 있었고, 민간이지만 한중일이 모여 만든 역사책이 있었다. 이런 노력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최근 주목받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와 관련한 제언도 나왔다. 석주희 재단 연구위원은 “한국, 영어, 일본어로도 가능하지만 영어로 이용하면 일본 측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챗 GPT가 언론기사, 연구 논문, 분석 자료 등을 인용하는 만큼 독도·역사 왜곡과 관련해 더 많은 내용을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