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길복순’ [쿡리뷰]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길복순’ [쿡리뷰]

기사승인 2023-03-31 19:26:45
넷플릭스 ‘길복순’ 스틸컷

유니폼을 입은 가녀린 한 여성이 폐쇄도로 한복판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난다. 상대에게 여유롭게 일본도를 건넨 그는 금방 싸울 태세를 갖춘다. 장검에 맞선 그의 무기는 대형마트에서 3만원 주고 산 도끼. 살벌한 육탄전을 이어가던 그는 예상치 못한 일격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곤 한 마디 한다. “미안, 마트 문 닫을 시간이라.” 그의 정체는 전설의 킬러, 길복순(전도연)이다.

넷플릭스 새 영화 ‘길복순’은 배우 전도연을 가장 열심히 활용하는 영화다. 그가 맡은 역은 주인공 길복순. 이벤트 회사에 다니는, 돈 잘 버는 평범한 엄마로 알려진 길복순의 본업은 살인청부기업 MK 전속 킬러다. 사람을 밥 먹듯 죽이는 그에게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은 있다. 유일한 가족인 딸 재영(김시아)이다. 딸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은 그는 슬슬 업계에서 발을 빼고 싶다. 그를 기용한 MK 대표 차민규(설경구)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길복순은 딸 때문에 일을 관두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딸 때문에 일을 계속하고 싶다. 엄마로서의 책임과 생계 사이에서 그는 저울질을 이어간다.

넷플릭스 ‘길복순’ 스틸컷

‘길복순’ 속 킬러들은 살인을 작품으로 비유한다. “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해.” “스케줄 나왔는데 리허설해봐야 해?” “바로 슛 들어가요.” “길복순은 이 작품을 실패할리 없는 사람이야.” 대부분 대사에서 살인은 연기로 치환 가능하다. ‘길복순’은 배우이자 엄마 전도연이 할 수 있는 생각을 길복순의 고민으로 우회해 표현한다. 길복순에게 살인은 쉽지만 육아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길복순’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로 인해 고민이 많은 킬러 길복순과 겉도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 길복순을 비춘다. 영화 제작 전 변성현 감독이 실생활 속 전도연을 장시간 관찰한 결과다. 변성현 감독이 본 전도연의 모습은 ‘길복순’에서 다양한 형태로 기능한다.

전도연은 ‘길복순’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를 클로즈업하는 것만으로도 완성되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 딸에게 정체를 들킬까 노심초사하던 길복순의 눈에 불안감이 깃드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연기로 작품을 장악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MK 본사로 간 길복순이 신입 킬러들 앞에서 싸움실력을 뽐내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슬로모션 효과와 박진감을 고조시키는 음악 사이 싱긋 웃는 전도연의 미소는 극 전체를 압도한다. 일부 액션 신에서는 버거운 듯한 느낌도 있으나, 관록 있는 연기로 모든 것을 아우른다. ‘길복순’은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무대다.

넷플릭스 ‘길복순’ 스틸컷

전도연 외에도 빛나는 배우들이 있다. 신입 킬러 영지를 연기한 이연은 적은 분량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유의 신선한 매력을 마구 보여준다. 딸 재영과 후배 희성 역을 맡은 김시아와 구교환은 제 역할을 부지런히 수행한다. 민규 역 설경구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킹메이커’ 속 모습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걸출한 액션신과 위압적인 카리스마는 그가 오랜 기간 다져온 내공을 보여주기 충분하다.

‘길복순’은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변성현 감독은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킹메이커’에 이어 확고한 연출 세계를 보여준다. 독특한 구도와 화려한 미술, 강렬한 색채 대비, 섬세한 조명, 재치 있는 효과음, 다양한 음악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극에 멋을 끼얹는다. 대놓고 과한 화면이 주는 세련미가 눈에 띈다. 극적인 설정, 과감한 연출은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변성현 감독의 세계관과 연출을 좋아한다면 ‘길복순’에도 열광할 수 있다. 일부 과격한 설정이나 힘이 과하게 들어간 화면은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도 여럿 있다. 분명한 건, 전도연의 매력을 들여다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다. 31일 넷플릭스 공개. 

넷플릭스 ‘길복순’ 스틸컷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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