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연애 예능’으로 불리며 매 시즌 화제 몰이를 한 채널A ‘하트시그널’. 오는 5월 방영되는 시즌4 출연자 10여명은 촬영 전 제작진에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했다. 앞선 시즌 출연자 일부가 방송 이후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논란이 일자 제작진이 마련한 비책이었다. 넷플릭스도 일반인(비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전 12년 치 생활기록부를 열람하고 당사자 동의를 받아 SNS에 올린 게시물을 전부 살핀다. 넷플릭스 역시 화제작 ‘피지컬: 100’ 출연자가 과거 학폭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돼 곤욕을 겪은 바 있다.
비연예인들의 방송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인성 검증이 방송가의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넷플릭스는 일반인 출연자와 계약하기 전 신상 정보를 살피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면담도 한다. 출연자가 사전 인터뷰에서 사실과 다른 답변을 해 프로그램에 피해를 끼쳤을 경우 이를 배상하게 하는 계약 조항도 넣었다. 넷플릭스에서 예능과 다큐멘터리 기획·제작을 담당하는 유기환 디렉터는 지난 4일 서울 명동1가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기존 방송 제작 방식보다 훨씬 더 많은 절차를 둬 일반인 출연자를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채널A는 생기부 공개에 동의한 사람들만 ‘하트시그널’, ‘강철부대’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로 했다. ‘하트시그널2’ 출연자 김현우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된 뒤에도 그를 스핀오프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던 2년 전과는 영 딴판이다. 지난달 30일 닻을 올린 MBC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소년판타지 – 방과 후 설렘2’ 제작진은 참가자를 선발하기 위해 3차례 면담을 거치고 당사자 동의를 얻어 SNS 게시물과 댓글을 모두 확인했다고 한다. “공권력이 필요한 영역엔 제작진이 접근할 수 없으니 그 전 단계까지 철저하게 검증했다”(강영선 CP)는 후문이다. JTBC ‘팬텀싱어4’ 제작진도 일반인 참가자가 과거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쏟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인 출연자의 과거 논란은 연예인 못지않게 파급력이 크다. 지난달 막 내린 MBN ‘불타는 트롯맨’이 대표적인 보기다. 방송 초반부터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참가자 황영웅은 과거 상해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드러난 데 이어 학폭과 데이트 폭력 의혹까지 제기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가 방송에서 하차한 뒤에도 황영웅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여론이 갈라졌다. 방송 이후 벌어지는 사건·사고도 치명적이다. ‘하트시그널’ 측은 시즌1 출연자가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피지컬: 100’에 출연했던 전직 국가대표 운동선수도 방송 공개 이후 흉기를 사용해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다만 넷플릭스 관계자는 “출연자 문제로 방영 중단을 고려 중인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방송 제작자들이 일반인을 찾는 이유는 현실감을 원하는 시청자의 요구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tvN ‘대탈출’ 시리즈 등을 연출한 정종연 PD는 “방송인은 연예 활동을 고려하다 보니 프로그램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 제약이 있다. 반면 일반인으로는 더욱 폭넓은 그림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주요 OTT 예능 라인업을 보면 ‘사이렌: 불의 섬’(넷플릭스), ‘19/20’(넷플릭스), ‘환승연애3’(티빙), ‘피의 게임2’(웨이브) 등 일반인만 출연하거나 일반인과 방송인이 섞여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학폭 등 과거 문제를 사전에 걸러내기도 일반인이 더 수월하다고 했다. “방송인에 비해 프로그램 출연을 조건으로 (생기부 등) 증빙을 요구하기가 쉽다”는 뒷얘기다.
연예기획사들도 신인이나 연습생을 영입할 때 생기부를 확인하고 모교를 방문해 교사와 면담하는 등 ‘인성 검증’에 열을 올리는 추세다. 익명을 요구한 연예계 관계자는 “데뷔할 만한 친구들은 재학했던 학교에서 생활기록부 등을 확인하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데뷔 자체를 재고하기도 한다”며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 때문에 여론이 바뀌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