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약 11개월이 지났습니다. 최근 윤 대통령이 한 법안에 대해 최초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정치권이 시끌시끌한데요, 그 대상은 바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입니다.
양곡관리법은 특정 양곡이 과잉 생산되었을 경우, 정부가 수매 및 시장격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법을 말합니다. 1950년 2월16일 법안이 제정된 이후 2021년 11월30일 타법 개정을 통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법안입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개정안’인데요, 더불어민주당에서 ‘1호 민생 법안’이란 이름을 붙인 해당 개정안은 2023년 2월27일 이후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변경, 포함됩니다. △정부의 양곡매입을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에서 ‘~하여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변경 △쌀의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 가격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시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의무적으로 매입 △개정안 시행 이후 증가한 쌀 재배면적에서 수확된 쌀에는 적용하지 않음 △논에 타 작물의 재배하게 하는 관련 시책ㆍ지원사업의 수립ㆍ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가 있습니다.
여기서 정부의 양곡매입을 ‘의무규정’으로 변경한 것과,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할 비율에 대한 변동사항이 논란의 핵심입니다. 윤 정부와 극민의힘에서는 이를 두고 ‘포퓰리즘’이다 라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죠. 해당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 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다”라며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쌀값 폭락에 따른 농가 소득을 보장하고,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정책”이라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양곡관리법의 대상이 되는 농업계는 어떨까요. 흥미롭게도 의견은 반반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는 양곡관리법에 대해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실련 관계자는 “정부가 말하는 포퓰리즘과 달리 개정안의 내용은 쌀 수급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보고 있다”며 “시장격리 기준은 이미 법에 있는 것이고, 임의조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의무 조항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개정안은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생산조정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쌀의 수급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사전 대책과 사후 대책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죠.
전농에서도 개정안 통과를 주장합니다. 전농은 지난달 30일 논평을 통해 “총리는 의무수매 조항으로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이 마비되고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더 떨어져 농민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내내 농민 목소리를 외면하던 총리 입에서 농민 피해를 걱정하는 말이 나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라면서 “곡물자급률이 20%에 불과한 상황에서, 쌀이 과잉생산되면 국가가 수매하고 비축해 식량위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식량위기 시대 어느 것보다 중요한 쌀의 안정적 생산을 담보하기 위해 생산비가 보장되도록 양곡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반면 반대하는 농업단체들은 쌀 의무매입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쌀 매입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 투입보다 가루쌀, 콩 등 대채작물에 집중해 쌀값 가격 하락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쌀전업농)는 성명을 내고 “수급조절에 국한된 정부 매입 의무화만 논쟁이 되고 있다”며 “농가소득 안정과 괴리된 채 단지 수급조절로만 끝나지 않도록 농업 생산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농업현장의 요청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쌀전업농은 개정안에 대해 △쌀 생산 농업인의 삶의 질에 대한 우려 △농가소득 확대 방안에 대한 진중한 고민 △생면산업이자 국민의 주식인 쌀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견수렴과 협의가 실종됐다고 규정했습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에서도 양곡법을 두고 갈등하는 현 구도에 대해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농연 관계자는 “지난해 역대 최대 물량인 90만t을 시장격리 했음에도 지금도 쌀값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며 “시장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은 쌀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무조건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결국 구조적 쌀 생산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정생산을 위한 노력과 함께 안정적인 수요기반 조성이 반드시 전제될 필요가 있다”며 “영세·소농가를 비롯한 쌀 농가의 소득안정을 보장함과 동시에 우량 농지 보전을 통한 식량자급률 제고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한농연 관계자는 “점진적으로 전략직불제 단가를 인상함과 동시에, 밀·콩·가루쌀·조사료 등 대상 품목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위한 정책 지원이 동반되는 것이 농업인들을 위해 더 나은 방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현재 정부와 여당, 야당이 농민을 위한 법안이란 이름 아래 소모적으로 싸우는 상황이 우려스러울 따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여당과 야당은 양곡법이라는 사안을 두고 진지하게 실효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기보다, 정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느낌이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농민들을 정말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감정적인 싸움보다는 논의와 토론의 장을 열고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