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묘를 입양하려고 입양계약서를 보니 계약자 당사자와 입양자가 완전히 갑을관계더라고요. 문제가 생기면 항목당 위약금 수백만원을 내야 한대요. 이게 맞는 건가요?”
반려동물 입양계약서를 두고 부정적 시선이 커지고 있다. 일부 입양계약서가 입양 예정자에게 과도한 개인정보나 요구사항을 제시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표준계약서가 없어서 내용이 제각각인 정체불명의 입양계약서들이 떠돌아다니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유기동물을 돌보는 동물 구조·임시보호(임보)자들도 입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양계약서는 길고양이나 구조된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과정에서 쓰인다. 필수는 아니지만 동물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입양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대부분 입양계약서를 작성한다. 보통 입양계약서에선 입양 희망자의 이름과 주소나 연락처, SNS, 가족관계부터 동물을 키워 보거나 떠나보낸 경험 여부, 반려동물이 함께 살 환경 여부, 함께 사는 가족들이 입양에 동의 여부 등을 묻는다.
최근 입양계약서 작성할 때 입양 희망자들과 구조·임시보호자들 사이에서 적잖은 논쟁이 벌어진다. 협회나 단체, 보호소 등 기관이 아닌 개인이 개인정보 수집을 하고 과도한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게 맞냐는 지적이다.
일부 입양계약서는 합의에 따라 신분증을 교환해 확인하거나 입양자의 신분증 사본, 등본 제출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소득, 재산, 회사 주소, 가족 연락처 등도 요구한다. 입양했다고 끝이 아니다. ‘매주’ 또는 ‘매달’ 입양 동물의 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나 사진을 공유하거나, 구조자가 원할 때 가정방문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한다.
“입양 계약 어기면 수백만원 위약금 배상하라고요?”
‘분양자가 입양계약을 해제·해지한 경우, 입양자는 즉시 분양자에게 고양이를 반환해야 한다. 입양자가 분양자에게 고양이를 반환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 위약벌로 금 500만원을 배상한다’
최근에는 위약 사항 각각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분양자가 입양계약을 해제·해지한 경우, 입양자는 즉시 분양자에게 고양이를 반환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위약금 500만원을 배상한다는 식이다.
실제 반려동물 커뮤니티에는 입양계약서에 대한 부담으로 입양을 포기했다는 글이 쏟아진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는 2주간 블로그에 입양한 고양이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조자가 집까지 찾아왔다는 입양자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려인 김모(38)씨는 “입양하고 소식을 전하는 건 입양자 선택”이라며 “(구조자와) 계속 연락하고 지내야 하는 건 감시받고 족쇄를 찬 기분 같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길에서 고양이를 구조해 입양 보낸 경험이 있는 조모(27)씨는 “입양계약서에 위약금을 넣는 건 선을 넘은 것 같다”며 “구조자가 무슨 권리로 돈을 요구하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못 믿으면 구조자 본인이 키워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입양 쉬우면 너무 쉽게 버려요”
입양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도 문제다. 동물학대, 이유 없는 파양 등 우려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2020년 한 40대 남성이 전북 군산 지역에서 푸들 품종 반려견 21마리를 입양 받아 18마리를 살해하고 3마리를 다치게 한 사건도 있었다.입양계약서의 필요성과 달리 일부 과도한 입양계약서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부담 때문에 정작 입양이 필요한 반려동물들은 주인 찾기에 애를 먹고 있다. 그렇다고 입양계약서를 쓰지 않자니 동물학대, 이유 없는 파양 등 우려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2년 전 서울시유기묘센터에서 길고양이를 입양한 이모(44)씨는 “입양계약서 내용이 왜 점점 더 강력해지는지 이유를 먼저 따져야 한다”며 “구조한 아동을 누군가에게 맡긴다고 생각하면 (입양계약서는) 당연한 것. 입양 조건을 더 철저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씨는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반려동물 입양하는 과정이 더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다”며 “우린 너무 쉽게 동물을 분양받거나 입양한다. 입양 받아 애인 생기면 버리고, 돈 없으면 버리고, 결혼하면 버리고, 출산하면 버리고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입양 희망자에 과도한 요구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동물자유연대 입양팀 관계자는 “단체는 입양 희망자 심사를 굉장히 까다롭게 체크한다”면서도 “입양을 보낸 이후에는 (반려동물이) 숨질 때까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지만, 너무 빡빡하게 확인하지 않는다. 입양 첫해에는 1년에 3번, 다음해부터 1년에 1~2번 정도 잘 지내는지 연락받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일부 과도한 입양계약서로 생긴 부정적 시선과 부담 때문에 정작 입양이 필요한 반려동물들은 주인 찾기에 애를 먹는다. 그는 “구조자가 매달 사후 관리한다고 하면 입양하지 않는다. 입양자를 너무 빡빡하게 관리하려 하면 서로 기분이 언짢아진다”며 “입양하면 입양자가 소유주인데 보호소에서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적인 입양계약서도 법적 효력 충분해요”
입양계약서는 표준거래양식이 따로 없다. 대부분 동물 관련 협회나 단체, 보호소,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입양계약서를 수정해 내용을 더 포함하는 식으로 사용한다. 구조·임보자와 입양자 간 분쟁은 늘고 있지만, 소관하는 기관이 없어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제각각인 입양계약서는 법적 효력을 가질까. IBS 법률사무소의 권유림 변호사는 “사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계약서도 충분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입양계약서의 위약금 조항에 대해 “그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라며 “실제 입양계약서 위반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계약서에 적힌 위약금이 과하면 법원이 감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입양계약서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관련해선 “계약서를 쓸 때 입양과 관련한 특정 목적에 한해서만 이용할 것이라고 작성해야 할 것 같다”며 “공익적인 차원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에게 화가 났다는 등의 이유로 구조·임보자 또는 입양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욕설을 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모욕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권 변호사는 입양 시 상호 간 이해와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물을 입양해 잃어버리거나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입양단체나 입양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이런 일이 누적되다 보니 예방을 위해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죠. 입양자는 ‘내가 좋은 일 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과도한 요구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왜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지 들어보고 입양을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