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를 뒤흔든 마약 음료 사건의 배후에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이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마약 제조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 A씨를 추적한 결과, A씨의 행선지가 중국으로 나타난 만큼 경찰은 중국 공안당국에 공조 수사를 요청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9일 마약음료 제조·전달책 길모 씨와 협박전화 번호 조작에 가담한 김모 씨를 상대로 범행을 지시한 '윗선'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 A씨가 길씨에게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마약음료를 제조하도록 지시한 단서를 잡고 중국에서 공수된 빈 병의 배송경로를 역추적하는 등 공범들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또 지정된 장소에 마약을 가져다 두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구했다는 길씨 진술에 따라 필로폰 판매책과 이번 범행을 꾸민 조직의 연관성도 추적하고 있다.
길씨는 강원 원주시에서 제조한 마약음료를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를 이용해 서울에 있는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보낸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경찰은 일당이 피해 학부모에게 협박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중계기를 이용해 중국 인터넷전화 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변작해준 혐의(전기통신사업법 위반)로 김씨의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은 오는 10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경찰은 마약음료를 담은 빈 병이 중국에서 건너온 점, 학부모들에게 걸려온 협박전화 발신지가 중국이라는 점, 현재까지 검거된 인물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우회 IP(인터넷주소)를 사용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고, 마약음료 현장 유포를 지시한 중간책들도 추적 중이다.
지난 3일 오후 2명씩 짝을 이룬 20∼40대 남녀 4명이 서울 강남구청역과 대치역 인근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학생들에게 마약음료를 건넸다. 이들은 구매 의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하다며 학생들에게 부모 전화번호를 받아 갔다.
피해 학부모들은 이후 조선족 말투를 쓰는 일당으로부터 "자녀가 마약을 복용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학교에 알리겠다"는 내용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
현재까지 마약음료를 마신 피해자는 학부모 1명을 포함해 총 8명이다.
현장에서 마약음료를 나눠준 4명은 지난 5∼6일 모두 경찰에 체포되거나 자수했다. 이들은 경찰에서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을 뿐 마약 성분이 든 음료인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검찰 수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스며든 충격적인 일”이라며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 유통과 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미래세대를 포함해 사회기반이 무너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인 만큼 마약범죄에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중국과의 수사 공조를 위해 일당을 특정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할 예정이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