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요? 요즘 누가 지갑 들고 다녀요”

“현금이요? 요즘 누가 지갑 들고 다녀요”

캐시리스 넘어 ‘지갑 없는 사회’로 성큼
2030대 청년들 “페이만 생활 가능”

기사승인 2023-04-28 06:05:01
현금 없이 다닌다는 청년들이 보여준 지갑.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이 눈에 띈다.  사진=임지혜 기자


현금 없는 사회가 눈앞이다. 지난 24~25일 만난 20~30대 23명 중 현금을 가진 청년은 4명에 불과했다. 청년들이 굳이 현금을 갖고 다닐 이유가 없는 시대다. 비상 현금이 없는 불안보다 휴대전화 배터리 0%가 더 두렵다. 삼성페이·애플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가 보편화돼 실물 카드나 지갑도 놓고 다닌다. 디지털 금융은 우리 일상을 얼마나 바꿔놨을까. 현금만으로 하루를 살면서 현금 없는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현금 승객이 나라니” 나의 현금

현금 찾는 것부터 번거롭다. 은행 ATM기에서 인출하려 했지만, 실물 카드 유효기간이 2년이나 지났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가까운 은행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정류장 8곳을 지나야 했다. 은행들이 점포를 많이 없앤 탓이다. 마침 은행까지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현금 2000원을 냈다. 버스 현금 요금은 1500원. 교통카드보다 50원 비쌌다. 버스 기사가 거스름돈을 주려고 잔돈통 버튼을 눌렀다. ‘텅텅’ 요란한 소리만 났다. 거스름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버스기사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는“버스회사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주겠다. 혹시 현금 500원이 있으면 내 돈으로 우선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빨간 신호에 걸릴 때마다 버스 기사는 버스회사 정보가 적힌 종이를 찾았다. 결국 기사는 3~4정거장 지났을 때쯤 주머니에서 동전을 찾아 잔돈을 줬다. 잔돈통 주변을 못 떠나는 사이 버스 승객 13명은 카드 또는 휴대전화를 교통카드 단말기에 찍고 자리에 앉았다. 힘겹게 거스름돈을 해결한 버스 기사는 “잔돈이 없어서 안 되겠다”며 수건을 올려 현금통 입구를 막았다. 그날 현금으로 버스를 탄 마지막 승객이 됐다.

버스 잔돈통이 비어 거스름돈을 못 받을 뻔 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은행에 도착해 20분을 기다렸다. ATM기를 이용했다면 벌써 업무를 보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창구 4곳 중 3곳에서 어르신들이 상담 중이었다. 기다린 끝에 창구에 앉아 태블릿에 찾을 현금 금액, 이름, 서명, 계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창구 직원이 5만원을 내줬다. 직접 손으로 적어서 창구에 제출해야 했던 종이 입출금전표는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했다. 은행 직원 A씨는 “여전히 창구에서 현금을 찾는 분들이 많다”며 “다만 젊은 층이 현금을 찾기 위해 창구를 오는 경우는 없다. 거의 어르신들이 현금을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현금으로 소비할 수 있는 매장은 많았다. 하지만 불편했다. 이날 방문한 B카페에서 현금으로 음료를 샀다. 키오스크로 단숨에 주문한 지인과 달리, 현금 주문은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카페 직원 C씨는“여긴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해서 현금 사용이 다른 지점보다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직장인들이 많은 회사 근처나 청년들이 주로 찾는 번화가 카페나 프랜차이즈 극장, 주차장 등에 현금 없는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상암동에 있는 회사에 가려면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지하철 운임비 1550원에 일회용 지하철 교통카드 보증금 500원이 필요했다. 현금으로 낸 대중교통비는 총 3520원. 다시 돌려받는 보증금 500원을 빼도 카드 결제로 1750원 낼 때보다 2배 가까이 비쌌다. ‘현금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때도 있었다. 퇴근 후 장례식에 현금으로 부조금을 냈고, 전통시장과 야시장에서는 현금 사용이 편했다.

음료를 현금으로 주문하려고 직원이 카운터에 올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키오스크에서 빠르게 페이로 결제하고 음료를 받아 간 지인이 부러웠다.   사진=임지혜 기자

“로또 살 때나 써요” 청년들의 현금


“지금 지갑에 현금 얼마 있어요?” 20~30대 청년 23명에게 물었더니, 4명만 현금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이정민(37)씨와 박보미(36)씨의 지갑엔 각각 5000원씩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로또 구매용 현금이었다. 8만원을 가지고 있던 임준혁(27)씨는 “예전에 현금을 받았을 때 지갑에 넣어뒀다”라며 “그 뒤로 쓸 일이 없어서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 최하영(37)씨의 지갑에는 8만5000원이 들어 있었다. 최씨는 “로또를 사기도 하고, 아이가 동네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할 때 현금이 필요하다”며 “또 카드나 페이는 생각 없이 지출하게 돼 (눈에 보이는) 현금으로 소비를 가늠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19명은 지갑에 교통카드·지역화폐카드·신용카드 등 카드 1장만 들고 다니거나 아예 모바일 지갑만 이용했다. 

“페이를 주로 사용해 휴대전화만 들고 다녀요. 예전에는 네컷사진을 찍거나 붕어빵 같은 길거리 음식을 사 먹으려고 몇천원씩 현금을 들고 다니긴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네컷사진도 카드결제가 되고 붕어빵도 계좌이체로 살 수 있으니 현금은 필요 없죠.” (이유리씨·25·회사원)

“작은 가방이 유행이라 지갑은 아예 안가지고 다니거나 한 뼘도 안 되는 카드지갑을 주로 가지고 다녀요. 현금은 진짜 필요할 때 아니면 안쓰고 계좌이체로 다 해결해요.” (박재은씨·28·회사원)

“페이로만 생활하다가 얼마 전 퇴근길에 휴대전화가 방전됐어요. 잔돈이 없어서 버스에서 내려야 했죠. 하지만 그 이후로도 지갑 없이 다녀요. 현금 들고 다니는 게 더 불편하거든요.” (김지연씨·34·회사원)

대다수 청년은 현금이 굳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윤성(32·회사원)씨는 “대체할 수단이 많아 현금 사용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 같다. 거래가 투명해지고 세수 확보의 장점도 있으니, 정부에서도 카드 사용을 권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일부 판매자는 같은 상품이라도 카드 결제 가격과 현금 결제 가격을 다르게 판매한다.   사진=임지혜 기자

“현금 제일 반가워” vs “현금 거래 없어요” 판매자의 현금


현금을 받는 이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대체로 소규모 업장의 자영업자나 전통시장에선 현금을 더 선호했다. 개인 택시기사 D씨는 “현금이 제일 반갑다”면서 “현금은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지만, 카드 결제 금액은 통장에 들어오기까지 영업일 기준 이틀은 걸린다. 카드 수수료도 부담”이라고 했다. 경기 광명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E씨는 “사회가 현금을 쓰면 손해인 세상을 만들었다”며 “요즘은 몇백원짜리 음료를 사면서도 전부 카드나 페이로 결제한다. 카드 수수료 생각하면 속 터질 때가 있다”고 했다.

광명의 한 전통시장에서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는 F씨는 “대형 업체는 필요하겠지만 우리 같은 소상공인은 모든 소득이 공개되는 게 부담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소득은 세금과 관계있다. 실제 이날 방문한 경기 안양의 한 전통시장 인근 일부 옷가게와 이불가게 등에서는 같은 상품이라도 카드 결제 가격과 현금 결제 가격이 달랐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할인해주는 식이다. 신용카드 사용자를 차별 대우하는 건 불법이다. 결제 방법에 따라 이중가격을 제시하는 것도, 카드를 거부하고 계좌이체나 현금을 강요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1항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나 중규모 이상의 업장은 현금보다 계좌이제, 카드 결제를 더 선호했다. 경기 안양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G씨는 “현금이든 카드 결제든 똑같다”면서도 “다만 현금은 정산이 안 맞을 때 곤혹스럽다. 솔직히 현금보다 카드 결제가 마음이 더 편하다”고 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H씨는 “매출에서 현금 비중은 2%도 안 된다. 현금 거래가 아예 없는 날도 있다”면서 “옛날처럼 현금 비중이 크면 세금 생각이 나겠지만, 요즘은 현금 거래 자체가 거의 없어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카드 결제 단말기가 현금 결제를 대체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금융취약계층 보호해야” 전문가의 현금


현금이나 카드가 없어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대부분 페이로 결제가 가능하고, 휴대전화로 계좌이체 할 수도 있다. 사회는 변하고 있다. 20~30대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디지털 취약계층은 더 불편해졌다. 이날 만난 은행 직원, 자영업자 등은 여전히 현금을 쓰는 사람이 많고, 그 중 대부분이 고령의 어르신이라고 전했다.

이승훈 KB경영연구소 금융경제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현금이 사라지는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며 “민간에 맡겨두면 수익성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 노인이나 금융취약계층 등은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정부가 소수 현금 사용자를 현금 없는 사회의 부작용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