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이 엠폭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접종 대상을 확대했지만, 그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문들은 이를 놓고 “오히려 국민 불안을 도모하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고 짚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3일 0시 기준 국내 엠폭스 확진자 수는 총 52명으로, 이 중 국내 감염추정 환자가 46명이다. 지난해 6월 처음 환자가 발생한 이후 잠잠하던 발생률은 최근 한 달 새 급격히 늘었다.
누적 확진자 52명 중 44명이 지난달 7일부터 잇따라 확인돼 하루 2명꼴로 감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국내 지역 전파 사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고등’이 켜졌다.
질병청은 확산을 우려해 엠폭스 백신 접종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대상을 밀접접촉자 혹은 의료진, 진단요원, 역학조사원에 한정했다면 앞으로는 18세 이상 고위험군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임숙영 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3일 브리핑을 통해 “8일부터 엠폭스 예방접종 대상도 강화할 예정이다. 전문가 자문회의와 예방접종전문위원회를 거쳐 확대 계획을 수립한 상태”라며 “엠폭스에 노출되기 전의 고위험까지 대상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방역당국은 구체적인 백신접종 대상 기준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접종기관 역시 고위험군 대상자에게만 별도로 안내할 방침이다. 다만 확대 대상자에는 남성 성소수자, 성매매 업소자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18일 기준 세계보건기구(WHO)가 엠폭스 환자 특성을 분류한 통계 자료를 보면 전 세계 7만7,740명의 확진자 중 남성이 96.4%였으며, 그 중 18~44세의 남성이 79.2%를 차지했다. 확진자 가운데 성적 지향이 확인된 3만438명 중 84.1%는 남성과 성관계한 남성이었고, 7.8%는 양성애자인 남성으로 나타났다. 전체 확진자 중 3.6%에 그친 여성은 52%가 성적접촉으로 인해 감염됐다. 이에 미국 등에서는 △성소수자 △성소수자와 성관계 가능성이 있는 자 △6개월 이내 성매매한 자 등을 백신 접종자로 규정하고 있다.
임 단장은 “국외에서의 접종 기준을 고려해 대상 기준을 정하고 있다”면서 “그 기준과 접종기관은 고위험군에게 따로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이 같은 조치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자칫 ‘사회적 낙인’을 씌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취재 결과 엠폭스 백신 접종은 ‘권고’ 사항으로, 고위험군으로 지목된 대상자가 원하면 접종할 수 있다. 백신 접종은 무상으로 제공되나 익명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번 방역당국의 대책을 두고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자를 늘릴 수도, 확산세를 잡을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까지 엠폭스 백신 접종자는 의료진이 200여명이고, 밀접접촉자는 단 2명뿐이다. 이미 감염자와 노출된 사람도 접종을 안 하는데, 노출 전 고위험군에게 접종을 권장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며 “게다가 해외와 다르게 익명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라 접종률을 높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위험군 기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것이 큰 문제라고 봤다. 코로나19 때와 같이 명확히 명시해야 고위험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고, 일반인들도 특정 장소에 방문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부가 고위험 시설로 지목한 목욕탕, 숙박업소, 클럽 등은 주로 성매개 접촉 감염인 엠폭스와 명확한 연관성이 없이 애매하게 지정돼, 업소 관계자와 일반 국민 모두에게 불안감만 줄 뿐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기준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는 것은 국민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줄 수 있다. 빠르게 진단 받고 백신을 맞도록 설득력을 가지려면 국내 감염 실태, 고위험 기준 정보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5월 가정의달, 7월 퀴어축제 등을 대비해 방역당국은 서둘러 대책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