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세. 2023년 한국의 중위 연령이다. 한국인 전체를 나이순으로 줄 세웠을 때 가장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나이를 뜻한다. 30년 전(1993년) 한국은 중위 연령 28.4세로 비교적 젊은 사회였다. 10년 후 33.5세, 또 10년 후인 2013년 39.7세로 올라간 끝에 올해는 40대 중반이 됐다.
인구감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청년 개념을 다시 세우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20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청년기본법은 청년을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40세가 넘어도 청년 대접을 해준다. 인구 유출이 심한 지방 소도시에선 청년 연령 상향 조정이 시작된 지 오래다.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54곳이 청년 조례 개정을 통해 40대를 청년으로 규정했다. 전남 고흥, 전북 장수, 경북 봉화, 충북 괴산 등은 49세까지 청년이다.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서울 도봉구는 청년 연령을 19~39세에서 19~45세로 높였다. 19세 자녀와 45세 부모가 나란히 ‘청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서울 자치구에서 처음 40대 청년이 나왔다는 소식에 일각에선 우려하는 시선을 보낸다. 청년 연령이 높아지면 정부나 지자체의 다양한 청년 지원 혜택을 받을 기회가 많아진다. 20~30대와 40~50대가 모두 청년으로 엮여 취업·주거 지원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탈락하거나 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취업·주택 등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 속에 더 불리해질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청년 연령 상향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방 소도시 곳곳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지원을 해온 임모(29·연구원)씨는 “40대는 지방 작은 마을에서 거의 막내 수준이라 보기 쉽지 않다”라며 “아이가 없고 20~30대 젊은 층이 없는 지역은 40~50대가 청년 역할을 한다. 지역 이탈을 막기 위해선 청년으로 불리는 연령에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청년과 노년층으로 양극화된 정책 속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온 30대 후반~40대는 청년 나이 상향을 반기기도 한다. 경기 광명시에 거주하는 박모(34·회사원)씨는 “30대 중후반부터 40대까지는 이도 저도 아닌 세대”라며 “청년 정책 지원도 못 받고 중장년 지원도 받기 힘든 끼인 세대”라고 했다. 이모(30·회사원)씨도 “‘영포티(젊은 40대)’란 말도 있지 않나”라며 “요즘 40대는 20~30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청년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결혼, 주택, 일자리 등 20~30대와 같은 고민을 하는 40대가 많아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김모(38·회사원)씨는 “요즘 40대 미혼자도 많다. 가정을 이루면 신혼부부 혜택을 받지만, 40대 미혼자는 청년 지원과 신혼부부 지원 모두 못 받는다”라며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 지원 정책도 많다. 20~30대 때와 비교해 삶이 안정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40대도 청년들과 비슷한 상황이 돼서 동일한 기준으로 경쟁하게 된 것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다만 청년 연령 상향만으론 인구 감소나 지방 청년 유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란 의견도 많았다. 박모(28·직장인)씨는 2년 전 취업을 위해 전남 목포시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가족이 아니면 목포에 더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박씨는 “청년들을 지역에 남게 할만한 정책이 없다”며 “40대까지 청년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고 해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될지 모르겠다. 정책은 결국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잘 배분해서 쓸까’인데, 굳이 ‘청년’으로 묶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모(39)씨도 “홍성엔 일할 곳이 없다”며 “청년 연령을 39세까지 올려 지원한다 해도 수도권으로 떠났을 것 같다. 공무원, 농부, 자영업자를 제외하곤 먹고 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구 양극화·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청년 연령 상향 등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 모니터링 평가센터장은 “지방 위기는 곧 청년 위기”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지방 소멸은 고령화·저출산 때문만은 아니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것이 큰 문제”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역은 청년 문제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년 연령 상향으로 새로운 청년들의 유입을 기대하는 것보다, 생존을 위해 지역 내 청년들을 붙잡는 것이 당장 더 중요한 과제한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청년인구 이동에 따른 수도권 집중과 지방 인구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으로 이동한 인구 중 청년 인구(19~34세)가 가장 많았다. 2019년 청년 인구의 수도권 순유입은 8만6661명으로, 수도권 전체 순유입 인구 8만2741명보다도 많다. 수도권과 대도시로 향한 지방 청년 인구는 반대로 이곳을 떠난 비청년 인구보다 훨씬 많다. 수도권으로 향한 청년 인구의 순이동만으로도 전체 순유입을 넘어서는 셈이다.
수도권 청년 인구 상황 역시 좋지만은 않다. 모든 지역에 골고루 청년 인구가 분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청년 연령을 45세로 상향한 도봉구는 서울시에서도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다. 서울 도봉구 도봉고등학교는 내년 폐교를 앞두고 있다. 올해 화양초등학교가 폐교했고, 내년에는 도봉고 외에도 덕수고등학교, 성수공업고등학교 등이 문을 닫을 예정이다.
전국 최대 광역지자체인 경기도마저 44년 후인 2067년 31개 시군 중 화성시를 제외한 30곳이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것이란 연구 결과(2021년 7월 감사원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감사보고서’)도 나왔다.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30대 여성 인구의 5배가 넘는 곳을 말한다.
이 센터장은 청년 연령 상향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만큼 인구 양극화, 지방 소멸이 가까이 왔다는 얘기다. 다만 한정된 청년예산이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우려에 대해선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기존 청년 정책이 수도권, 대도시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지역에 사는) 청년들의 반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구의 이해 없이 정책이 마구잡이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청년들의) 오해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