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처럼 음악처럼…우중 ‘서재페’ [쿡리뷰]

비처럼 음악처럼…우중 ‘서재페’ [쿡리뷰]

기사승인 2023-05-29 07:00:01
2023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 프라이빗커브

28일 막 내린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에선 내리는 비마저 음악의 일부가 됐다. ‘타닥, 타다닥, 타닥.’ 불규칙한 빗방울 소리는 때론 기타 소리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드럼 소리처럼 리드미컬했다. 모처럼 찾아온 ‘우중 서재페’는 더위는 식히고 낭만을 더했다. 관객들은 ‘서재페가 서울 워터밤 재즈 페스티벌이 됐다’며 흥겨워했다. 워터밤 페스티벌에서 물놀이를 하듯 서재페의 우중 공연을 즐겼다는 의미다.

“비 오는 야외에 서 계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비 내리는 서울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서재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는 이렇게 인사했다. 2016년 내한 이후 7년 만에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나는 자리. 날씨마저 이번 재회를 반기는 듯했다. 쌀쌀한 공기가 ‘쌀 아저씨’ 음악에 더없이 잘 어울렸다. 라이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직 핀 조명 하나에 의지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혼잣말하듯 “웰, 아이 돈 노/ 이프 아임 롱”(Well I don’t know/ If I’m wrong)이라고 노래를 시작하자, 굵은 빗줄기와 흐린 하늘마저 영화 속 한 장면이 됐다.

지천명을 앞둔 가수는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장악했다. ‘캐논볼’(Cannonball), ‘애스트로넛’(Astronaut), ‘코코넛 스킨’(Coconut Skin) 등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관객들은 라이스가 펼쳐놓은 슬픔과 고독 속으로 함께 침잠했다. “슬픔과 분노 중 뭘 원해요?” 라이스가 이렇게 묻자 관객들은 일제히 “앵그리”(Angry·화가 난)를 외쳤다. 라이스는 대답 없이 기타 줄을 뚱뚱 퉁기더니 ‘인세인’(Insane)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중 공연은 그렇게 1시간가량 이어졌다. 관객이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한 것일까. 라이스는 이날 말을 줄이고 노래에만 집중했다. 10여분 늦게 시작한 공연은 예정 시간에 맞춰 끝났다. “자리를 지켜줘서 고마워요. 집에 가면 기분 좋게 샤워하시고요.” 마지막 곡으로는 히트곡 ‘블로워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가 울려 퍼졌다. 고요하던 객석에선 코러스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옅게 흩어졌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맷 말티스. 프라이빗 커브

올해 서재페를 통해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 이들도 있었다. 같은 날 88호수 수변무대에서 공연한 영국 싱어송라이터 맷 말티스도 그중 하나다. 날씨가 고약하기로 소문난 나라에서 건너온 그는 “우리가 영국에서 비를 몰고 왔다”며 웃었다. 무대는 단출했다. 말티스는 건반 앞에 앉았고, 맞은 편엔 베이스 기타 연주자를, 뒤편엔 드럼 연주자를 뒀다. 아기자기한 밴드 구성은 아늑한 수변무대 정취와 더없이 잘 어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가수와 관객 모두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우산과 천막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는 오히려 영국에서 날아온 감성 신사를 위한 배경음악이 됐다.

말티스는 이날 가수 박효신과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뷔가 함께 부른 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노래 ‘레스 앤 레스’(Less and Less)를 비롯해 ‘럼-컴 곤 롱’(Rom-Com Gone Wrong), ‘리틀 퍼슨’(little person), ‘컬 업 앤 다이’(Curl up & Die), “엄마를 위해 썼다”던 ‘애즈 더 월드 캐이브 인’(As The World Caves In) 등을 불렀다. 객석에선 “가즈아!” “아이 러브 유”(I love you) 같은 환호가 들렸다. 말티스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더니 “여러분이 이렇게 빗속에서 공연을 봐주는 게 우리에겐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날 서재페에선 히트곡 ‘뱅!’(Bang!)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미국 형제 팝밴드 AJR,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Z세대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 미국 그래미 어워즈에서 통산 8개 트로피를 손에 쥔 재즈 베이시스트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등이 공연했다. 한국 가수로는 장기하, 빈지노, 정승환, 정세운, 존노·고영열 등 다양한 장르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기획사 프라이빗커브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3일간 이어진 이번 페스티벌엔 총 5만여 관객이 다녀갔다.

빗속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프라이빗커브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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