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채한도 인상을 위한 협상이 최종 합의를 이뤘다.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리스크를 해소한 것이다. 다만 불확실성은 곳곳에 있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협상 타결 이후 단기 국채 발행이 늘어난다면 시중 유동성에 충격을 줄 여지가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고착화도 우려된다. 이에 금융투자업계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긴축 강도에 대한 시장 기대감 조정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 운영위원회는 부채한도 상향 조정 합의안을 7대6으로 가결시켰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메카시 하원의장은 채한도 인상 타협안에 최종 합의했다. 미 재무부가 선정한 채무불이행(디폴트) 시한인 오는 6월5일을 앞두고 결정적인 고비를 한 번 넘어선 셈이다.
이번 합의안은 향후 2년간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31조4000억달러 규모로 상향하는 대신 2024년 회계연도 지출은 동결하고, 이듬해에는 예산을 최대 1%만 증액하는 상한을 둔 것이 골자다. 또 공화당의 요구대로 푸드스탬프(식량 보조 프로그램) 등 연방정부 복지 수혜자에 대한 노동 의무 요건도 강화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합의안에 대한 공화당의 내부 반발이 거세다는 점이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폭스뉴스 인터뷰를 통해 “이번 합의 후 미국은 계속 파산으로 향할 것”이라며 “향후 1년 반 동안 4조 달러를 증액한다는 것은 엄청난 지출”이라고 비판했다.
미 하원은 31일 예정된 전체 회의에서 합의안의 법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하원 전체 435석 가운데 과반인 218표가 필요하다. 공화당 내 강경파들의 반대가 여전히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긍정적인 전망만을 내비칠 순 없다.
법안이 통과되어 부채한도 협상 리스크가 해소되더라도 문제는 존재한다. 미 재무부 곳간을 채우기 위한 국채 발행이 한꺼번에 쇄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전략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신규 국채 발행 규모는 1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시중 유동성에 충격을 줄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부채한도 협상 타결 이후 국채 발행이 재개된다면 수급적인 측면에서 금리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국채 발행에 따른 시중 유동성 축소 등이 금융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국채금리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어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 국채 발행 규모는 올해 3분기 말까지 1조달러가량 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 경우 은행 부문의 유동성은 빠르게 고갈된다. 단기 대출 이자도 상승할 여지가 있다. 결국 미국 경제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Bofa는 이같은 대규모 국채발행이 기준금리를 0.25%p 올린 것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미 은행권의 불안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미 은행권 사태는 예금인출 확대와 자금조달 비용 상승 등으로 여전히 불안이 잠재함을 시사한다. 은행의 단기 조달비용을 나타내는 초단기 금리(FRA-OIS) 스프레드는 은행권 불안 이전(올해 1~2월 평균) 12bp에서 지난달 13일 32bp로 2.7배 급등했다.
이는 다방면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상업용 부동산이다. 상업용 부동산은 재택근무 증가에 따른 입주율 하락 등으로 오피스 공실률이 지난해 4분기 18.7%로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17.6%)을 상회했다. 미국의 4대 상업은행인 웰스파고는 지난 4월 부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지난해 12월 이후 50% 가까이 증가한 15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향후 대출과 신용 조건이 엄격해질 시 상업용 부동산 관련 연체와 채무불이행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에 의하면 상업용 부동산과 제조업계 대출은 은행 전체 대출의 3분의1로 추정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발표자료에 따르면 미 은행의 숨은 손실은 2조달러에 달한다. 미 상업은행 전체 자본금의 95% 손실로 유추된다. 부채가 자산가치를 상회하면 상업은행의 지급불능으로 이어진다. 뱅크런에 따른 은행 파산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애기다.
여기에 더해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의 정체로 인플레이션 고착화도 우려된다. 탄력적인 소비로 인해 물가는 느린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 지난 4월 근원 PCE 물가는 전년 대비 4.7% 올랐다. 시장 예상치인 4.6%를 상회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4.6~4.7%에서 경직된 모습이다.
물가 고착화를 보여주는 다른 지표는 미시간대 향후 5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이다. 5월 미시간대 5년 후 기대인프레이션은 3.1%로 두 달 연속 상승했다. 디스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중기 기대인플레이션의 반등은 물가가 빠르게 내려오기 힘들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PCE 발표 직후 시장에서 판단하는 미 연준의 6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은 60%대로 높아졌다. 은행위기 이후 3.7%까지 떨어졌던 미국 2년물 금리도 4.6%까지 올랐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지난주 연준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노동시장이 인플레이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물가와 금리에 대한 답을 노동시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4월 미국 실업률은 3.4%로 54년 만에 역대 최저치인 상황에서 고용시장의 경우 연준의 예상과 다르게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결론적으로 고용시장 내 수급불균형이 느리게 완화되는 상황에서 빠르게 악화하긴 쉽지 않아 경기 및 물가도 완만하게 둔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이와 함께 연준의 통화 긴축 강도에 대한 시장 기대감도 조정받아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