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뭔지도 몰랐는데” 헤드폰·신발 맡기는 청년

“전당포 뭔지도 몰랐는데” 헤드폰·신발 맡기는 청년

‘연 20%’ 법정최고금리에도…문의 활발
유가족이 찾아간 금반지도
다중채무자에 저신용·저소득 청년 급증

기사승인 2023-06-10 06:05:02
8일 서울 마포구 한 IT전당포에 대출자가 찾아가지 않아 중고로 팔릴 예정인 맥북과 카메라가가 놓여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원래 사회 생활하는 30~40대가 주 고객층이었는데 최근에는 20대 손님이 예전보다 많아졌어요. 오후 6시까지 영업인데 ‘10분만 더 열어달라’고 사정해 퇴근 후 부랴부랴 오는 사회초년생들이 많아요”

급전을 구하려 저신용·저소득층 ‘최후의 보루’인 전당포 문을 두드리는 청년이 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한 전당포에서 만난 사장 한모(48)씨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방문하는 20~30대 손님은 10명 정도다. 이곳은 휴대전화, 노트북, 아이패드, 카메라 등 전자기기를 주로 취급하는 IT전당포다.

13년째 전당포를 운영 중이지만 최근 손님이 늘어나면서 경기 불황을 체감한다는 게 한씨 설명이다. 20대가 전당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나 싶어 한 손님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몰랐는데 최근 뉴스 보고 알게 됐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띠링’, ‘띠링’. 기자와 이야기하는 중에도 대출을 문의하는 문자메시지 알림 소리는 계속됐다.

손때 묻은 케이스에 담긴 애플사의 노트북 ‘맥북’, 새것 같은 니콘 카메라, 기타 2대와 기타앰프까지. 모두 주인을 기다리는 담보물이다. 헤드폰, 에어팟, ‘콘솔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 명품 신발 등 청년이 들고오는 담보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한씨는 “경기불황으로 배달업계도 상황이 좋지 않은것 같다”며 “최근에는 배달 대행하시는 분들이 헬멧 쓰고 오셔서 목걸이, 반지 등을 맡기고 가신다”고 부연했다.

전당포는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를 적용한다. 노트북 담보 대출을 문의하는 문자.   사진=정진용 기자

 

돈 갚지 못해 남겨진 물건…유가족이 찾아간 금반지도

전당포는 물건을 맡기고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업의 일종이다. 대부분 중고 시세 60% 정도로 대출금이 책정된다. 휴대폰은 20~30만원 수준이고 노트북, 카메라는 천차만별이다. 기본 1개월 대부약정 후 실제 이용한 일수에 따라 이자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2달 전 개통한 삼성 갤럭시S23 플러스를 보여주자 “30만원까지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휴대폰은 명의가 있고 단말기 할부 약정 기간도 걸려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청년들이 전당포를 찾는 이유는 대출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청년층은 상대적으로 채무 상환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한도·신용점수에 막혀 대출을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당포는 금융기관 대출과 달리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돈을 빌릴 수 있다. 대출 기록도 남지 않는다. 대가는 가혹하다. 돈을 갚을 때는 법정최고금리인 연 20%가 적용된다. 

많지는 않지만 대출자 중 약 5%는 빌린 돈을 결국 갚지 못한다. 대출 만기를 알려도 계속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전당포에서는 물건을 중고로 내놓는다. 한씨는 “수개월 전 한 청년이 금반지를 맡긴 뒤 연락이 끊겼는데 부모님이 전당포로 찾아왔다”면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들었다. 유품을 돌려주는 데 마음이 씁쓸했다”고 말했다. 생활고를 겪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서울 시내 한 전당포 간판.   사진=정진용 기자

 

“금융권 대출받기 힘들어” 지난해 4만명 늘어난 청년 다중채무자

이미 청년층이 진 빚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년간 30대 이하 대출은 30%에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가계대출 잔액은 514조5000억원으로 펜데믹 이전인 2019년 말(404조원)과 비교하면 27.4% 증가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늘었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신용·저소득인 30대 이하 청년층은 지난해 한 해에만 4만명이 늘었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청년층 취약차주는 46만명이었다. 이는 전체 취약차주(126만명)의 36.5%를 차지한다.

빚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20~30대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1~4월 채무조정제도 신규 신청자 6만3000여명 중 20~30대는 2만2000여명으로 전체 35.4%였다. 특히 20대 신청자 증가세가 가팔랐다. 같은 기간 20대 신청자만 8043명으로, 3개월 만에 지난해(1만7263명) 신청 인원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경기 불황으로 손님이 늘어나는 건 일부 전당포만의 이야기라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A씨는 “경기가 좋아야 사람들이 돈을 쓰고 사업도 벌이면서 대출 수요가 늘어난다. 강남 지역의 기업형 전당포나 서울 접근성 좋은 곳에 있는 전당포를 제외하고는 이 업계도 죽어난다”면서 “전당포를 찾는 청년들은 주로 유흥, 도박에 쓸 돈이 필요해서 온다. 생계가 어려워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당포를 이용할 경우에는 과도한 대부이자를 요구받거나 사전 통보 없는 담보물 임의 처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2016년 IT전당포 이용실태를 조사하고 △계약서상 이자율, 약정변제기 이후 담보물 처분 관련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 체결 이후에는 △법정이자율을 상회하는 금전 또는 추가 비용(감정료, 중도상환수수료, 택배비 등)을 요구받는 경우 거절할 것을 당부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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