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불법 복제 없애려면? ‘처벌‧교육‧홍보’ 3박자 갖춰야

디지털 불법 복제 없애려면? ‘처벌‧교육‧홍보’ 3박자 갖춰야

기사승인 2023-06-19 19:18:20
이대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디지털 불법 복제, 인식 전환과 저작권 교육 강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저작권 보호 및 교육 강화 방안'을 발제하고 있다.

“800페이지, 1.5kg의 전공책을 들고 다니다 보면 ‘아, 이 책 버리고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학기 초 전공책 구매 시 가장 먼저 찾은 건 전자책이었습니다. 책과 노트북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전자책을 판매하는 출판사는 거의 없었고 구매하더라도 필기가 어렵습니다. 책을 구매 후 스캔하는 방법도 있지만 번거롭습니다. 많은 학생이 ‘PDF파일 하나 팔아주면 안 되나’ 생각하고, 이 같은 이유로 불법 PDF 파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지윤씨가 19일 유기홍‧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경태‧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쿠키뉴스‧대한출판문화협회‧교수신문이 주관한 ‘디지털 불법 복제, 인식 전환과 저작권 교육 강화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남의 창작물을 함부로 가져다 쓰는 게 잘못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을 대학 사회 구성원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대학 내 교육 목적으로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하다 믿어온 사실이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는 “불법 복제를 어떤 식으로 막을지, 일반 전자책과 구별되는 인프라 구축 방안, 그리고 변화하는 대학 교재 시장에 대한 대비 등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불법 복제, 사회적 인식 변화 시급

디지털 불법 복제에 대한 교육 목적의 홍보와 인식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지난 3월 방문한 대학가에서는 전공책을 들고 있는 학생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한 강의실에 있던 40명 중 39명이 태블릿 PC와 노트북을 펴고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 불법 스캔한 PDF 파일을 보고 있었다. 주로 대학 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당근 마켓 등 중고 거래를 통해 개인 간 PDF 파일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개인 거래 특성상 단속이 쉽지 않다.

이대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 저작물을 이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저작권법을 위반할 경우, 법정손해상 청구를 통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 손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작권법 홍보와 교육을 통해 인식을 개선하려면 저작권 집행 등 각종 제도와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저작권 교육을 위한 예산도 늘고 있으나 교육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안정섭 한국저작권위원회 교육운영팀장은 “지난해 청소년 38만9496명, 성인 29만7741명을 더한 총 68만7237명이 저작권 관련 교육을 받았다”면서 “하지만 이는 청소년의 5.6%, 성인의 1%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안 팀장은 “저작권 교육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 예산과 인력확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디지털 불법 복제, 인식 전환과 저작권 교육 강화 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김봉억 교수신문 편집국장, 정성희 한국저작권보호원 홍보협력부 부장, 류원식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 이진우 교육부 교육콘텐츠정책과장, 윤용한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장, 김지윤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생, 강일구 교수신문 기자.   사진=박효상 기자

무분별한 불법복제, 무관용 원칙을

최근 대형 서점에서 전자책(e북) 5000권이 대거 해킹됐다. 유출된 5000권엔 베스트셀러가 다수 포함됐고, 피해 출판사는 500곳 이상으로 전해졌다. 유출된 파일이 있으면 별다른 절차 없이도 수백 쪽에 이르는 책 전문을 책 뷰어로 읽을 수 있고, 무한 복제도 가능하다. 출판 산업이 더욱 큰 타격을 입을 거라 우려하는 이유다.

정성희 한국저작권보호원 홍보협력부장은 불법 저작물을 이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 피해가 덜했을 거라고 지적했다. 정 부장은 “불법 복제물을 이용하는 다른 장르와 달리, 출판은 (소비자가) 직접 제본하고 유포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죄책감을 가장 덜 느끼는 장르가 출판 같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출판업계의 생각 그대로 무관용 원칙이 필요하다”며 “저작권 보호와 관련된 예산이 증액되면 불법 복제물 이용을 부끄럽게 느끼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원식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 겸 교문사 대표는 “음악과 영상, 웹툰 등은 불법 복제를 하면 홍보 효과가 있고 산업이 커질 수도 있다”며 “하지만 대학 교재는 다르다. 불법 복제가 발생하면 그만큼 시장이 사라져 피해가 더 크다”라고 발언했다. 류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을 통해 자료를 공유하고 학생들도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공유 문화가 급격히 발달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불법 복제가 이어질 경우, 출판사는 책 출간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중단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해외 원서를 찾아야 하는데 가격이 더 비싸 해적판 이용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가장 효과적인 건 법 집행”이라며 “단속과 처벌이 이뤄질 경우 불법 복제는 근절될 것이다. 강력한 법 집행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네이버 한 중고물품 거래 카페에 ‘PDF’를 검색해서 나온 게시글 목록. 

장기적 관점, 처벌‧교육‧홍보 함께 가야

대학생 대다수가 불법 복제를 경험한 만큼, 법적 처벌 같은 단기적 관점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한국저작권보호원의 ‘대학교재 불법복제 이용실태 조사(2018)’에 따르면 응답자 51.6%가 불법 복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학기당 필요한 교재 8권 중 2권이 불법 경로를 통해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매 경로는 PDF 등 전자파일이 4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전체 제본(32%)과 부분 복사(26%) 순이었다.

이진우 교육부 교육콘텐츠정책과장은 “저작권 교육이 잘 이뤄졌다면 불법 복제와 저작권 침해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 같아 아쉽다”며 “처벌방안도 중요하나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단위에서 교육을 함께 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과장은  “2022년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와 AI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중”이라며 “그 안에 저작권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로 현장 교사들이나 대학 교수진 중심으로 교과서가 집필되고 있어 이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해야 한다”라며 “지금이 교사와 교수진을 위한 저작권 교육의 골든타임”이라고 덧붙였다.

윤용한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장은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K콘텐츠에 대한 불법 유통 근절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대책안에는 홍보와 교육, 단속과 처벌, 신고 포상제 등 관련 내용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불법 저작물이 유통되고 침해되는 양상이 계속 복잡해지고 있다. 한두 가지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 저작물 유통과 사용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문화도 있다”라며 “이 같은 인식 전환은 긴 호흡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고 밝혔다. 끝으로 윤 과장은 저작권 교과서 개발 및 인정 교과서 승인, 온라인 강의 자료 업로드 시 침해 내용 자체 점검을 통한 경고 및 시정 조치, 저작권 윤리교육 과정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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