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선행 속 자사고 유지… ‘킬러 문항’ 빼면 사교육 잡힐까

초등 선행 속 자사고 유지… ‘킬러 문항’ 빼면 사교육 잡힐까

고교학점제 앞두고 자사고·특목고 쏠림 우려
교육 전문가들 “사교육 부추기는 정책” 우려 목소리

기사승인 2023-06-21 06:05:01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하늘교육 주 초·중학생 대상 오프라인 고입 특별 설명회에 많은 학부모가 참석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 종이 넘기는 소리, 그리고 볼펜 소리.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초·중학생 대상 오프라인 고입 특별 설명회장엔 고요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원에서 주관한 고입 설명회를 듣기 위해 일찍부터 학부모와 학생들이 몰려 입구에 긴 줄이 늘어섰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의대 집중 현상, 문·이과 통합, 현재 입시 구도와 변화 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메모했다. 자녀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등 사교육 경감을 위한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서열화 우려 속에서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한 것을 두고, 정부의 사교육 경감 기조와 상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존폐 위기였던 자사고·특목고가 그대로 유지된 것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쏠렸다. 최근 학원업계에서 진행한 고입 설명회를 다녀온 학부모 김모(40)씨는 “중1 자녀의 고입을 대비하기 위해 갔다”며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해도 당장 와닿지 않는다. 일단 내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특목고를 목표로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초4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38)씨 역시 “자사고나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주변 부모들을 보면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집중하더라”라고 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하늘교육 주 초·중학생 대상 오프라인 고입 특별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설명회 책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전문가들은 교육 커리큘럼이 우수하고 시험도 어려운 자사고, 특목고 등이 앞으로 대학 입시에서 일반고보다 유리해질 거라고 분석한다. 오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와 고교 내신 절대평가가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사라지고 변별력이 저하되면 자사고, 특목고의 인기가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월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고교 전체의 내신 절대평가와 자사고·외고 존치가 같이 이뤄질 경우, 자사고·외고 내신의 불리함이 없어지면서 경쟁률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매우 나쁜 수”라며 “지금은 상대평가로 내신이 불리함에도 (자사고 등에) 진학한다. 고교학점제 이후엔 그런 장치까지 해제돼 자사고, 외고, 국제고 쏠림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고의 교육력 제고는 물 건너갈 수 있다”며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적용하는 고교학점제로 실제 고등학교 교육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큰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   사진=임지혜 기자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 교수도 “오히려 사교육비를 부추기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사교육은 사교육 문제대로, 자사고·특목고 문제는 이 문제대로 따로 논의를 하면 정책이 상충할 수 있다”며 “두 가지를 연결해 정책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과거에도 초등생부터 자사고나 외고, 과학고 입시 과외가 성행한 것을 언급하며 “요즘 자녀가 한 명인 가정이 많은 만큼, 아이에게 투자하는 분위기가 더 과열될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 자사고, 특목고 등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현재도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9만6000원이었다.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41만5000원)의 1.7배에 달한다. 외고·국제고 희망 학생은 1.5배, 과학고 희망 학생은 1.6배 많은 월평균 사교육비를 썼다.

경기 안양 평촌 학원가에서 학원을 가는 학생들 옆에 숙제를 하는 학생들이 앉아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고교학점제 시행과 함께 고1 석차 등급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어 사교육 우려를 키운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2, 3학년 때 선택과목이 늘어나고 A~E로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계획이다. 고1은 1~9등급의 석차등급제(상대평가)가 유지될 것으로 보였지만, 지난해 12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내신 절대평가를 고1부터 적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중학교 선행학습 유발 등 부작용 우려에 교육부는 현재까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 따르면 고1 공통과목 역시 등급을 줄이는 방안이 여전히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현 정부는 일단 고교학점제를 하면서 자사고, 특목고를 존치하겠다는 그림”이라며 “고1 석차 등급을 줄이게 되면 1등급을 받을 확률이 높아져 의대에 가는 경로로 자사고나 외고를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에 맞춰 또 학원을 찾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사고, 특목고가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선발 과정에서 공정성을 높이고 고교 서열화를 막는 방안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자사고에 ‘입학 추첨’ 또는 ‘학생 선발권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송 위원은 “서울 자사고처럼 다른 자사고들도 추첨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며 “일반고는 학생 선발권이 없다. 학생 선발권이 없는 학교과 있는 학교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이라고 말했다. 또 자사고, 특목고 학생 선발권에 대해 “해외에선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고,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양방향 방식을 잘 선택하지 않는다. 한국 대학처럼 서열화가 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도록 하고,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것에 제한을 둔다”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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