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휴먼에 입덕… 어쩌다 우린 ‘플며’들었나 [가상인간에 진심②]

버추얼 휴먼에 입덕… 어쩌다 우린 ‘플며’들었나 [가상인간에 진심②]

기사승인 2023-06-23 06:00:32
지난 3일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왜요 왜요 왜’ 무대를 선보인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유튜브 MBCkpop 캡처

처음엔 단순한 그래픽이라 생각했다. 자꾸 보니 버추얼 휴먼(가상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어느 순간 정이 들었다. 라이브 방송 날짜를 기다리고, 플레이리스트에 노래를 추가했다.

나만 겪은 일이 아니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는 데뷔곡 ‘기다릴게’ 뮤직비디오는 3개월 만에 조회수 383만을 기록했다. 음악방송에 출연하고 버스킹, SNS 라이브 방송도 한다. 첫 영상통화 팬 이벤트엔 무려 35개국 팬이 몰렸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쩌다 버추얼 휴먼에 스며들었는지, 플레이브 입덕 과정을 재구성했다.

#일주일
플레이브에 스며드는 데 걸린 시간, 단 일주일이었다. 지난 12일 오후 10시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플레이브 무대 영상이 시작이었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왠지 모를 당황스러움, 그리고 기술 발전에 대한 놀라움. 많은 감정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여느 아이돌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선입견과 거부감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래도 알고리즘은 꿋꿋하게 플레이브 영상을 계속 안내해줬다. 어느 순간 영상을 보며 피식하고 웃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결국 홀린 듯 라이브 방송까지 찾아보고 말았다.

#왜요왜요왜
신선한 충격이었다. 약간의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무대 영상은 중독성이 강했고 편안했다. 낯설었던 버추얼 휴먼이 여느 아이돌과 똑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을 보며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경계심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중독성 있는 노래 가사도 귀에 맴돌았다. 어느덧 ‘너 정말 왜요 왜요 왜 왜요 왜요 왜’라는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플레이리스트에도 노래를 추가했다. 영상 댓글을 보면 비슷한 경로로 플레이브에 스며든 사람들이 많았다.

#입덕부정기
노래는 좋지만, 아직 아니야.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도 입덕을 부정했다. 그저 노래가 좋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버추얼 휴먼에 대한 선입견과 주변 시선 영향이 컸다. 다른 아이돌과 달리 쉽게 입덕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새로운 플레이브 영상을 찾아왔다. 왜 이렇게 웃긴 영상이 많은지. ‘플레이브 개그 영상 모음’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영상을 보며 웃고 있었다. ‘노래가 좋더라’에서 ‘쟤네 진짜 웃겨’로 바뀌었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 유튜브 PLAVE 플레이브 캡처.


#입덕인정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계속 보니 정이 들었다. 이제 낯설었던 비주얼도 익숙해졌다. 선입견을 극복하니 다른 아이돌과 다르지 않았다. 라이브 방송을 하며 팬들과 만나고, 팬카페에서 팬들과 소통하고, 음악방송에 출연해 무대를 보여준다. 다른 점은 버추얼 휴먼이란 사실 뿐이다. 장점도 많다. 버추얼 휴먼은 사람처럼 외모가 늙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사생활 문제가 생길 일도 없다. 그렇게 ‘플며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버추얼 휴먼의 모습 뒤 본체가 누구일지 궁금할 때가 많다. 최애 캐릭터도 생겼다.

#플요일
플레이브 팬이 된 이후, 일주일은 ‘플요일’ 전과 후로 나뉜다. 플요일은 플레이브가 라이브 방송하는 날이다. 주로 월요일과 목요일에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플요일은 이상하게 일찍 눈이 떠진다. 평소보다 20분 일찍 일어나고 약속도 잡지 않는다. 퇴근 후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오후 8시가 되면 라이브 방송을 본다. 2시간 조금 넘게 영상을 본 다음, 곧바로 공식 팬카페로 이동한다. 공식 팬카페엔 라이브 방송 여운이 남은 플레이브 팬들로 가득하다. 그날 라이브 방송 얘기를 하다 보면 멤버들이 찾아온다. 플레이브는 연습을 마친 뒤 보통 자정이 지나서 팬카페에 온다. 멤버들과 소통하다 보면, 새벽 3시까지 팬카페카 불타오른다. 잠을 참으며 카페 글을 읽다가 겨우 눈을 감는다. 이제 다시 플요일을 기다리며 현실을 살아야 한다.

#버추얼시대
머지않아 버추얼 아이돌 시대가 오지 않을까. 현실 아이돌 팬들은 열애설이나 루머 등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2D가 낫겠다’라고 한탄한다. 생각보다 아이돌 사생활 이슈는 팬들에게도 예민한 문제다. 버추얼 아이돌은 그럴 일이 없다. 다른 아이돌과 열애설이 나지도, 사건사고를 일으킬 여지도 없다. 기존 연예인이나 아이돌 준비생들에게도 버추얼 아이돌은 기회다. 오랜 연습생 생활을 거치고도 콘셉트가 맞지 않아서, 나이가 많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데뷔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버추얼 아이돌 시장이 커지면 재능 있는 연습생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버추얼이 삶에 스며드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플레이브는 선두 주자 중 하나고요. 낯선 호기심이 호감과 기대로 바뀌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플레이브 ‘기다릴게’ 뮤직비디오 댓글)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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