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구산영(김태리)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취직은 쉽지 않고 준비 중인 공무원 시험에 통과하기도 요원해 보인다. 설상가상 어머니는 사기꾼에 속아 돈을 날렸다. 그러다 갑자기 접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 어린 시절 죽은 줄만 알던 아버지가 살아있었고 심지어 오늘 사망했단다. 황급히 찾은 친가에서 그는 할머니에게 유품이라며 붉은 댕기를 건네받는다. 그날부터 구산영의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지난 주말 첫 방영을 마친 SBS ‘악귀’는 으스스한 오컬트 장르의 매력을 십분 살린 드라마다. 첫 회부터 주인공 구산영이 귀신에 씌고 기행을 저지른다. 악귀를 쫓던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은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만, 구산영은 귀신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자신이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불안해한다. 염해상은 구산영에게 씐 악귀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거듭 경고한다.
‘악귀’는 은유적으로 공포감을 자아낸다. 극에는 귀신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거울과 그림자를 통해서만 보인다. 붉은 댕기를 만져 악귀가 옮겨 붙은 구산영은 그림자를 잠식당했다. 악귀는 머리를 풀어헤친 그림자로서 구산영과 함께한다. 귀신을 보지 못하던 구산영은 악귀가 몸집을 키우자 거울을 통해 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귀신이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만큼 기존 공포드라마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와 시청자를 놀라게 하진 않으나, 스멀스멀 피어나는 음산함은 극이 끝나고도 잔상처럼 남는다. 그러면서도 잔잔하게 웃을 여지를 남긴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처럼 무게를 잡다가도 허무한 상황을 연출할 때면 허탈한 웃음이 새 나온다.
오컬트물에 청춘을 엮어 감성을 건드는 건 ‘악귀’만의 차별점이다. ‘악귀’는 구산영을 중심으로 청춘의 고단함을 비춘다. 취직하지 못하는 20대나 가정·학교폭력 그늘 아래 놓인 10대가 등장해 “어떻게든 살고 싶다”며 울먹인다. 극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바는 단순하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메시지다. 귀신이 응징한 이들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구산영에게 깃든 악귀는 어머니의 돈을 털어간 보이스피싱범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던 원혼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에게 향한다. 때문에 온라인상에는 귀신이 사람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극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는 건 ‘악귀’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시청률은 1회 9.9%(이하 전국 기준), 2회는 10%로 나타났다.
볼까
김은희 작가 신작을 기다려왔다면 일단 보자. 특유의 음울하면서도 희망찬, 그러나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국형 귀신, 오컬트 등 장르 팬도 실망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태리와 오정세의 호흡을 기대한 이에게도 시청을 권한다. 인간과 악귀를 오가는 김태리의 연기가 볼거리다. 오정세의 새로운 변신도 눈에 띈다.
말까
무서운 분위기를 꺼린다면 다른 드라마를 보는 게 좋다. 직접적으로 귀신이 등장하지 않아도 심장이 철렁할 만한 장면이 여럿 나온다. 아무렇지 않게 봤다가도 자기 전에 드라마 내용이 생각날 수 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