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전공의 기소 위기에 “전공 포기할래요”

‘응급실 뺑뺑이’ 전공의 기소 위기에 “전공 포기할래요”

대구 응급의학과 전공의, 피의자 조사 긴급 기자회견
“이대목동병원 사태처럼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 번질까” 우려도

기사승인 2023-07-03 17:48:25
119 구급차.   쿠키뉴스 자료사진

“대구 응급의학과 전공의 사례를 보고 벌써 응급의학과 전공의 몇 명이 그만뒀습니다. 전공을 포기하려 고민하는 전공의도 여러 명입니다. 안 그래도 바쁜 응급실에서 법적 책임문제가 발생한다면 응급의학과 전공의 기피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죠.”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한림대 성심병원 응급의학 전문의)이 3일 쿠키뉴스에 이같이 털어놨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관련 대구 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자 전공 포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이 회장은 전했다.

“현장서 최선 판단 내린 것… 응급체계의 문제”

앞서 대구에서 지난 3월19일 건물 4층에서 떨어져 골목길에 쓰러진 채 발견된 17세 환자가 병상을 구하지 못해 구급차에서 2시간 동안 헤매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119 구급대가 처음 방문한 병원이 지역응급의료센터인 대구 파티마병원이다.

의협에 따르면 당시 근무 중이던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3년차 A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치료가 가능한 경북대병원으로 전원을 권고했다. 환자의 자살시도가 의심된다는 119 구급대의 설명과 환자의 의식이 명료하고 활력 징후가 안정적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판단이다. 

이를 두고 경찰은 전공의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를 받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전공의 A씨는 지난달 16일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거부’ 위반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이를 두고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응급의료체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임에도 피교육생 신분인 전공의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는 3일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를 잘못 진단해 개별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대처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리는 행태에 대해 강한 비판과 함께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전공의가 전원을 요청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김원영 대한응급의학회 정책이사(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는 ‘환자가 3m 높이에서 떨어졌고, 의식이 멀쩡하며 다리가 좀 다친 것 같다’고 처음 전해 들었다. 3m에서 떨어졌다면 경증 환자로 분류되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함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전원을 요청한 것”이라며 “현장에선 최선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외상보단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병원은 정신과 폐쇄병동이 없다”며 “실제 이 병원에서 몇 년 전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를 받았는데, 이후 극단 선택을 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때 100% 병원 책임이 되기 때문에 의사가 소신 진료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부연했다. 

의료계는 사건 발생의 근본적 원인으로 ‘응급실 과밀화’를 꼽는다. 의협은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응급실에 걸어 들어오는 경증환자로 넘쳐나고 있어 정작 당장 응급의료나 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며 “현재 적정 이송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아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코에 레고가 들어갔다며 한 일가족이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온다. 경증환자를 다른 데로 보내라고 하는데, 법 조항을 한두 개 바꿨다고 돌려보낼 수 있겠나”라며 “응급실 과밀화가 의료진 문제인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가 3일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대구 응급의학과 전공의 피의자 조사에 따른 대한민국 응급의료 붕괴 위기’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이대목동병원 사태 재현될라… “전공 기피 현상 심화” 우려

이번 사태가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대목동병원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집중치료실에 있던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연달아 숨지자,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재판 결과 모두 무죄를 받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선 여파가 컸다.

의협에선 이 사태를 계기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졌다고 본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113.2%였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 △2020년 74% △2021년 37.3% △2022년 27.5% △2023년 15.9%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사태와 비슷하게 전공의가 필수의료 행위를 했을 때 보호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높다”며 “의료진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가 됐을 때 전공의들이 (필수의료 분야에) 지원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의협은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사고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응급의료기관 보상 등 충분한 지원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 자제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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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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