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차이” 수술실 CCTV 의무화, 환자 희망 될까

“하늘과 땅 차이” 수술실 CCTV 의무화, 환자 희망 될까

고(故) 권대희씨 유족 “억울한 환자 덜 나타날 것” 기대
“장비 문제 핑계로 촬영 거부 가능” 법안 실효성 논란
‘불법’ PA 간호사 등 의료현장 혼란 우려도
복지부 “의료기관 임의로 촬영 거부 못하도록 노력”

기사승인 2023-07-10 06:00:01
지난 2021년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수술실 CCTV 법안 관련 입법 공청회에서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수술실 내 유령수술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 권대희씨의 CCTV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의료기관 수술실 내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의무화법이 오는 9월25일부터 시행된다. 대리수술을 근절하기 위한 취지로 환자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고(故) 권대희씨 유족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는 지난 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법안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있지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이 있는 것과 없는 건 환자에게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제정 논의가 촉발된 ‘고 권대희씨 사망사건’의 유족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은 성형외과 원장 장모씨가 권씨 수술 과정에서 경과 관찰과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과다 출혈로 숨지게 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확정했다. 장씨는 당시 다른 환자를 수술한다며 권씨의 지혈을 간호조무사에게 30분가량 맡기는 등 혐의도 받았다.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거는 수술실에 설치됐던 ‘CCTV’였다. 의료진은 권씨 사망 후 책임 회피에 급급해 과실로 인한 환자 사망을 부인했으나, 수술실 CCTV에는 간호조무사가 권씨 몸에서 나온 혈액이 담긴 통을 분리해서 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경찰 조사 결과 권씨는 수술 당시 3500cc에 달하는 출혈량을 보였지만 의료진이 제대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는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건 수술실 CCTV 덕분이었다. 9월에 법안이 시행되면 환자 입장에선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리수술이 버젓이 일어나거나 억울한 환자가 나타나는 것을 일부 예방할 수 있지 않겠나. 특히 대리수술 피해가 가장 많은 성형외과, 정형외과의 경우 CCTV 촬영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내 수술실 CCTV.   경기도

다만 시행 3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남은 과제가 산적하다. 특히 CCTV 촬영 예외사항 때문에 법안 시행 전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시행규칙에 따른 촬영을 병원이 임의적인 이유로 거부하면 환자가 손쓰기 어렵도록 설계했다는 지적이다. 

개정령안에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거부할 수 있는 여러 사유가 담겼다. △응급환자를 수술하는 경우 △상급종합병원의 지정기준에서 정하는 전문진료질병군에 해당하는 수술을 하는 경우 △지도전문의가 전공의의 수련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수술을 시행하기 직전 등 촬영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시점에서 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가 촬영을 요청하는 경우 등은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박시영 간호와돌봄을바꾸는시민행동 활동가는 “‘촬영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시점에서 촬영을 요청하는 경우’는 병원 측에서 의도적으로 이 조항을 악용해 장비의 문제를 핑계로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어 삭제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개정령안에 따르면 영상정보의 보관기준을 30일로 지정하게 돼있는데, 이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환자가 CCTV 촬영본을 이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의 이정민 변호사는 “영상정보의 보관기준을 30일로 지정해 의료사고 피해자가 영상정보마저 얻을 수 없게 무력화 시키는 조항”이라며 “어떻게 일반인이 30일 안에 형사고소와 중재원의 조정신청을 할 수 있겠나. 접수시간을 포함해도 30일은 지나치게 짧다. 최소 90일 이상을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진들의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시행 이후 혼란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간 ‘수술방 간호사’라고 불리는 진료보조(PA) 간호사는 대학병원에서 부족한 전공의를 대체한다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허용돼 왔다. PA 간호사는 수술보조에 이르기까지 전공의(레지던트)들이 하는 업무 상당부분을 대신해왔다.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 자문위원은 “PA 간호사는 현재 의료법 위반의 문제다. PA 간호사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제정 논의 시작부터 업무범위에 대한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해왔다. 그런데 시행까지 3개월도 안 남았는데 아직도 PA 문제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질타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시행 전까지 환자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법률에 규정돼 있고,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시행규칙으로 마련 중”이라며 “의료기관이 이 규정을 벗어나 임의로 촬영을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시행 과정에서 의료기관에 적극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PA 간호사 문제에 관해선 “6월부터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며 “협의체를 통해 환자 안전 강화, 서비스 질 향상, 팀 단위 서비스 제공 체계 정립, 책임소재 명확화 방안 등을 논의해 개선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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