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불안, 그리고 고립. 지금도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마음 건강에 문제를 겪고 있다. 최근 온라인 활동 시간이 증가하고 코로나19 등으로 사회 환경이 변한 것 역시 악영향을 미쳤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인 자살률 증가세가 멈추지 않는 한국 사회. 이들의 마음 건강을 진단하고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학생 마음 건강 챙김’ 토론회에서 아동·청소년의 마음 건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나왔다. 이날 토론회엔 교사·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부터 교육부·복지부 관계자 등 전문가와 아동·청소년 건강관리 주체 부서가 모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아동·청소년(만 0~17세) 자살률은 2021년 10만명당 2.7명으로 2000년대 들어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학생 정신 건강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신의진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서울 한 유명 대학병원에 30개 정신과 보호(폐쇄)병동이 있다”라며 “환자 90%가 자해 등으로 온 14~15세 아이들이다. 이미 아이들이 포진해 있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어른들도 정신과 보호병동에 못 간다”라고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시 영유아 발달조사 1차 선별 검사 결과, 부모용검사 (CBCL), 교사용 검사(TRF), 언어발달평가, 인지발달검사에서 절반 이상인 64%가 이상 수치에 들었다. 이들을 상대로 정밀조사 결과, 2명 중 1명(48%)은 정신건강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우울 등 정신 건강에 적신호를 보여도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 힘들다. 지원하는 서비스들이 교육부(위센터) 복지부(정신건강복지센터) 여성가족부(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내엔 외국처럼 전문적인 정신 건강 관리 프로그램도 없다. 신 교수는 “한국은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하고 약은 준다. 하지만 심리를 지원하는 센터는 없다”며 “지금처럼 (교육부가) ‘위기 학생을 빨리 발견해서 빨리 병원에 보내자’ 모델이 아닌, (병원에 가기 전)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문가와 함께 프로그램과 제도를 만들어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현장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같은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재영 서울 중동고 교사는 “(학생의 극단선택이 발생하면) 학교는 남은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안고 가야 한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학교를 방문해 남은 학생들의 상태를 보고 정서적으로 잠시 충격을 받았는지, 위험군에 있지 직접 보고 구분한다. 이렇게 위기 상황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학교에 직접 방문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학생과 가정에) 구체적인 도움을 제시할 수 있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동·청소년 건강 관리 주체인 교육부와 복지부는 정신 건강 지원 시스템 부족을 인정하면서, 학생들의 마음 건강 증진을 위해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교육부나 교육청은 위기 학생 중심으로 접근해왔다. 정희권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과장은 “(앞으로는) 모든 학생에 대한 관리 체계를 새롭게 정립,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학교에서만 해결할 순 없다. 지역사회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승일 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 과장도 “정신건강센터에 온 학생들 중 선별해 1년에 40만원 한도 내에서 치료비를 지원한다. 모든 학생이 아닌 기초생활수급, 차상위만 지원이 가능하다”며 “점차 대상자 폭을 넓히고 지원금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법제화 필요성도 언급됐다. 정유경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과 과장은 “개별학생 상황에 맞춰 필요한 지원을 하는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면서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을 촉구했다. 통합지원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학교 내 학생맞춤통합 지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지자체 등과 연계·협력해 학교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가 마련되면, 학교 내에서 학생의 마음건강 증진이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병욱 의원은 지난 5월31일 학업 및 경제적‧심리적‧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 발굴하고, 학생별 상황에 적합한 통합지원을 하는 내용의 학생맞춤통합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이날 토론회를 지켜본 김 의원은 “학령 인구 감소, 저출산 등으로 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보육과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호기”라며 “의료계와 교육계, 학교, 보건소 등이 연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