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34·직장인)씨는 올해 긴 여름휴가 대신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대출금리에 물가까지 올라 경제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7월 말~8월 초(7말8초)가 아이 어린이집 방학이지만 성수기라 피하려 한다. 경기 이천시 한 스파 숙소에서 숙박하려 했더니, 평소 10만원도 채 안 되던 숙박비가 3배 이상 올랐다. 이씨는 “성수기 휴양지 숙박비와 교통비는 너무 비싸고 붐빈다”라며 “당일치기로 박물관 같은 곳에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7말8초=여름휴가’란 공식은 옛말이 됐다. 최근 성수기를 피해 여름휴가를 미루거나 가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신 의미 있게 휴가를 소비하며 만족감을 높이는 ‘스마트 컨슈머’ 청년들이 늘고 있다.
‘여름휴가’ 의미 작아져
휴가 대신 페스티벌 즐기기
물가 상승에 여행 경비도 부담
최근 20~30대 여름휴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긴 여름휴가를 보내기보다 당일치기 여행, 혹은 연차와 주말을 활용한 1박2일, 3박4일 등 짧은 여행을 즐긴다. 꼭 여름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선택이 가능하다는 분위기다.
정윤서(28·직장인)씨는 여름 휴가철에 주로 페스티벌에 간다. ‘흠뻑쇼’와 같은 재밌는 페스티벌이나 행사가 휴가철에 많다. 휴가라고 해서 꼭 1박2일 이상 숙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겐 당일치기도 휴가다. 정씨는 “젊음 앞에 1년 365일이 성수기”라며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직장인 박혜경(30)씨도 “여름은 페스티벌”이라며 “(성수기에) 휴가를 가면 페스티벌은 못 간다”고 했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여행 경비가 오른 것도 여름휴가를 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직장인 신보미(37)씨는 “7~8월 여름휴가는 갈 생각이 없다”며 “사람만 많고 너무 비싸다. (성수기 때 쓸 돈 모아서) 오는 9월 해외여행을 길게 다녀올 생각”이라고 했다. 여름휴가를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박민지(29)씨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올해 하반기 중에 여름휴가가 아닌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라며 “여름휴가 시즌에 여행을 가면 평소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한다. 올해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가지 않을까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항공이용료에 숙박비, 식음료비 등 무엇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성수기라 오른 숙박비도 부담이다. 한 숙박 예약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살펴본 결과, 성수기인 다음달 초 강원 강릉시 유명 관광지 A호텔 1박 숙박비(주말 4인 기준)는 65만원이었다. 한 달 뒤 오는 9월 초 숙박비는 42만원으로 약 20여만원가량 차이가 난다. 숙박비를 아껴도, 껑충 뛴 밥값을 무시하기 어렵다. 국가통계포털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비 물가 지수는 117.66으로 전년 동월 대비 6.3% 올랐다. 지난달 콘도 이용료 물가 지수 역시 105.76로 1년 전보다 13.4% 뛰었다.
달라진 여름휴가 트렌드는 자기표현과 차별성을 중시하는 2030세대의 모습을 반영한 결과다. 이은하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뻔한 방식으로 휴가를 보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 휴가를 즐기는 것보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즐긴다. 최근 방송에서도 기존에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베트남, 태국, 일본 등)보다 인도, 몽골 같은 곳을 가는 것도 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에서 공유되는 정보들도 휴가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정보 공유나 확산이 별로 없어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휴가를 보냈다”라며 “최근엔 어떻게 휴가를 보내면 좋은지 라이프 스타일이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정보가 많이 공유된다”고 설명했다.
꼭 여름휴가 아니어도 되지만…
“그래도 7말8초에 간다”
여름에 꼭 휴가를 가야한다는 개념은 많이 흐려졌다. 하지만 일부 청년들에겐 여름휴가가 필요하다. 연차를 몰아 써서 긴 기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이고, 휴가비를 지급하는 회사도 있다.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청년들도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름 성수기에 휴가를 떠난다. 지난 10일 온라인 조사 전문기관 피엠아이가 발표한 ‘올여름 휴가에 대한 기획 조사’(전국 만 20~69세 남녀 3000명)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명 중 7명 이상이 7월 넷째주에서 8월 셋째주 사이에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라고 답했다. 성수기 시즌을 피해 8월 이후 여름휴가를 즐기려 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5.4%에 불과했다.
휴가비를 주거나 긴 연차 사용을 허락하는 등 여름휴가를 떠나도록 권하는 회사들은 여전히 많다. 중견 건설사에서 근무하는 최현민(39)씨와 대형 유통업체를 다니는 이다영(34)씨는 매년 휴가시즌이면 50만원의 휴가비를 받는다. 최씨는 “휴가비가 생기면 여행을 갈 때 조금은 마음 편히 소비할 수 있다”며 “소비 촉진 효과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식품회사에 다니는 오지영(34)씨도 최근 휴가비로 20만원을 받았다. 그는 “이직하고 난생 처음 휴가비를 받았다”라며 “너무 좋아서 애사심이 생기더라”고 했다. 박민지씨는 “여름휴가 명목으로 연달아 연차를 쓸 수 있어 여름휴가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름휴가의 의미가 남다른 청년들도 있다. 아르바이트하며 취업 준비 중인 김모(22)씨도 올해 7말8초에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다. 김씨에게 여름휴가는 “1년 중 절반을 잘 다려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는 “나머지 절반도 더 열심히 달리게 할 힘을 주는 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여름휴가는 나의 원동력”이라는 이래희(24·취준생)씨는 “여름휴가가 특별하기보다는 삶에 지쳤을 때 떠나는 휴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