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새는 국기원...안전보다 시장님 ‘관심사업’ 우선?

비 새는 국기원...안전보다 시장님 ‘관심사업’ 우선?

1972년에 세운 태권도 중앙도장...2015년 ‘서울미래유산’ 지정
나무로 된 천장 빗물 새고 일부 발암물질 석면 노출
냉난방 시설도 허접...장애인 이동편의시설도 없어
추경서 개보수 정비 4.6억원 빠지고 오세훈표 ‘수변활력 거점사업’ 예산 늘려

기사승인 2023-07-24 07:00:02
지난 14일 열린 국기원 주관 ‘외국인 연수 및 심사’ 행사 모습.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국기원 건물이 행정 당국의 무관심과 탁상행정 속에 안전에 위협을 받고 있다. 나무로 된 천장은 빗물이 새고, 냉난방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천장 일부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시공됐다. 장애인 이동편의시설도 설치되지 않아 법률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계 ‘태권도의 심장’이란 명성을 무색하게 한다.
 
국기원은 1972년 설립된 세계 태권도의 중앙도장(본부)이자 지도자 등 전세계 7만여명이 찾는 명소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국기원을 후손에게 전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다만 건물 소유주인 서울시는 시설 개보수에 미온적인 모습이다.

24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기원 건물은 지은 지 50년이 지나면서 시설물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비만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새는 등 개보수가 시급한 상황이다. 복도쪽 천장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시공됐다. 장애인 이동과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지 않다.


비 새는 천장…통로엔 발암물질

국기원 천장은 나무로 만들어져 습기에 약한 구조다. 건물 안전진단에서 ‘B(양호)등급’을 받았지만, 비만 오면 빗물이 샌다. 지난 12~14일 국기원이 주관했던 ‘외국인 연수 및 심사’ 행사 때는 천장에서 줄줄 새는 빗물을 받기 위해 곳곳에 쓰레기통을 배치하기도 했다. 
 
안전 분야 한 전문가는 “나무로 된 천장에서 비가 샌다는 건 이미 곰팡이가 끼고 썩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나무가 수축 이완을 하면서 붕괴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면서 “정밀 안전진단과 함께 신속한 개보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 설치된 석면 천장도 문제로 지적된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석면 건축자재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진(가루)을 방출하는데 호흡기를 통해 흡입된다. 이 경우 20~40년가량 잠복기간을 거친 후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호주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석면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국기원 관계자는 “본원에 근무한 사람들 중에는 암에 걸린 사람들이 유독 많이 있다. 국기원 직원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건강이 걱정된다”면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데, 서울시 등 관련 기관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국기원 주관 ‘외국인 연수 및 심사’ 행사 때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받기 위해 설치한 쓰레기통(왼쪽)과 비 새는 천장 

위법 알고도 장애인 편의시설 미설치
 
또한 국기원은 경사로와 리프트 등 장애인 이동을 위한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국기원에 출입하려면 휠체어 등 이동보조기기를 직접 들고 이동해야 하거나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비상시 대피할 피난 시설도 없어 장애인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관련 법률에서는 공공시설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및 비상시 피난·대피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설치하지 않으면 법률 위반이다. 하지만 시설 개선을 위한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곳이 서울시이기 때문에, 국기원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을 설치 안 해도 강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장애인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노력을 전혀 안 하고 있는 지자체장들이 있다”면서 “선거 때만 되면 장애인들 표를 얻으려고 온갖 얘기들을 많이 하지만 정작 끝나고 나면 ‘언제 봤냐’는 식으로 이렇게 나 몰라라 한다. 장애인들이 표의 결집력을 보여줘서 호되게 심판해야 된다”고 일갈했다.

석면으로 시공된 국기원 복도 천장.

관리 주체 모호…손 놓은 탁상행정
 
국기원 시설의 노후 문제는 이미 행정 당국에서 인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다만 관리 주체가 불문명해 보수비용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국기원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100억원을 지원받은 특수법인이지만, 토지와 건물은 각각 서울시와 강남구 소유이기 때문이다. 국기원 건물로 한정하더라도 서울시 내부에서 체육과 공원 등 사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담당부서가 명확하지 않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 6월 ‘태권도 진흥 및 지원 조례’를 일부 개정해 노후화된 국기원의 시설 보수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예산 지원에 미온적이다. 실제 7월초 통과된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국기원 노후시설 개보수 정비’를 위한 4억6000만원이 최종 조율 과정에서 누락됐다.
 
이와 관련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김형재 의원은 “서울시 추경에서 국기원 개보수 예산 지원을 논의했으나, 담당부서와 예산과가 서로 미루기식 핑퐁 행정을 하면서 빠졌다. 오히려 예산을 삭감했던 ‘수변활력 거점사업’이 늘었다”면서 “오세훈 시장 중점 관심사항이라고 하는 하천 수변시설 몇 군데 짓는 것이 추경에 편성할 만큼 긴급인지, 안전을 위해 국기원 시설의 개보수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긴급한 것인지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국기원은 건설된 지가 오래돼 대대적으로 보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제약이 많이 있고 재정에 한계가 있어서 개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영상=장경호 기자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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